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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부터 방영하여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는 드라마 ‘아는 와이프’를 보고 난 느낌은 기발하면서도 발칙한 구상에서 이어지는 감탄과 씁쓸함, 거기에 포복절도와 여름 밤의 공포가 어우러진, 그야말로 간만에 수작(秀作) 생활 드라마가 하나 나왔다는 것이다.

먼저 기발하면서도 발칙한 구상이란 부분은 이 드라마의 제목에서부터 찾을 수 있겠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의 아내를 두고 ‘아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다. ‘아는’이란 표현은 누군가를 지칭할 때 아주 가까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싶은 심리를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즉, ‘아는 와이프’라는 제목은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남편이 여러 가지 애욕이 뒤엉켜 있는, 더 솔직히 표현하면 무섭기만 한 아내에게 거리를 두고 싶은 심리가 표현된 것이다.
또 하나의 기발하고 발칙한 구상이 드러나는 부분은 이 세상 어느 누구든 한 번 이상은 가져 보았던 과거의 너무도 아쉬웠던 선택, 그때의 그 잘못된 선택 때문에 현재를 후회하고 그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서 바로잡고 싶은 욕구를 대리충족 시켜준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의 시청자들 중 남성, 특히 유부남들은 모두 깊이 감정이입이 되었을 것이다. 나 좋다고 따라다녔던 그 때 그 여자, 그 여자에게 조금만 더 내가 신경을 썼더라면, 조금만 더 과감했더라면 지금의 내 인생이 훨씬 멋있게 바뀌진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하지만 이 세상 그 누구도 그걸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슬프지만 냉정한 현실을 인정하며 살아가야만 함을 잘 알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는 또한 그렇게 냉정한 생활 속에 치여 살며 자꾸만 변해만 가는 나와 내 배우자의 씁쓸한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토록 상큼하고 예쁘고 꿈 많던 여학생이었던 지금의 내 아내가 어쩌다 1회의 소제목처럼 ‘나와 한 침대를 쓰며 나를 이기는 괴물’로 진화 되었는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처럼 멸치 비늘만한 월급에 양육비, 대출비, 생활비 등등을 빠듯하게 부담해야 하고 게다가 애들까지 키워야 하며 행여나 새벽에 애가 잠에서 깰까 봐 잠자리조차 편하게 가질 수 없으며 직장에 나가선 직장 상사눈치, 손님의 하대를 견뎌야 하며 살다 보니 저절로 괴물이 될 수 밖에 없는 씁쓸하면서 냉정한 현실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 즉, 이 드라마에서는 아주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은 서로에게 환상을 가진 남녀가 좋아서 하는 것이겠지만 실제 결혼생활은 결코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드라마의 주요 플롯 자체가 매우 재미있고 발칙한 상상에서 시작되니 당연히 이 드라마에서는 여기저기에 포복절도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꽤 등장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물론 남편인 차주혁이 괴물이 된 아내 서우진에게 혼찌검이 나는 장면들이다. 차주혁은 과거 한 순간의 그릇된 선택으로 이처럼 무섭기 그지 없는 괴물과 함께 살며 괴물에게 밥도 못 얻어 먹고 비자금을 쥐어 짜서 간신히 구입한 중고 게임기 하나를 전전긍긍하며 집에 숨겨 놓는다. 잔뜩 화가 난 아내 앞에서 찍소리도 못하며 아내가 집어 던진 꽃게 다리에 얼굴에 상처가 나 반창고를 붙인 채 쫓겨나서 만난 친구들에게 신세한탄만 할 뿐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악처와 살다 보니 철학자까지 되어버린 이 차주혁과 서우진 부부에게 숨겨진 정말 놀라운 과거는 서우진이 차주혁을 미치도록 짝사랑해서 쫓아다닌 여고생이었다는 것이다.


이 여고생의 장래 희망은 좋아하는 오빠의 와이프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 꿈을 이룬 여고생은 한 침대를 쓰며 오빠를 이기는 무서운 괴물이 되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감탄했던 부분은 잘 만들어진 납량특집을 보여주는 한지민의 연기였다. 애당초 이 드라마의 작가가 어떤 장르를 구상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겐 명랑 납량특집 공포물이었다. 그리고 그 명랑과 공포의 오싹함을 다른 배우도 아닌 한지민이 연기했다는 것이야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한지민이란 배우는 사회활동도 열심히 하는 인성이 착하기로 유명한 배우이자 순수하고 청초한 눈빛을 가진 청순가련형 배우였는데 말이다.


내가 이제껏 알고 있던 배우 한지민은 쪽진 머리가 잘 어울리는 왕비의 기품이 묻어나는 배우, 맑고 투명한 눈빛을 가진 사랑스러운 배우였다.


내가 이제껏 알고 있던 한지민의 또 다른 모습은 인성이 착하기로 유명하고 오드리 헵번같은 스타 폴리티션을 꿈꾸는 배우였다.


애를 둘이나 키우는 독박육아의 워킹맘으로 집안에서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에 몸빼 바지를 입고 남편(그것도 여고생 때 죽자고 짝사랑했던 오빠)에게 입에 담기도 어려운 더러운 쌍욕을 퍼붓는 것은 일상다반사인 생활밀착형 아내로 완벽하게 빙의된 느낌이었다. 특히 1회에서 마치 ‘머피의 법칙’처럼 하루 종일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이며 다사다난했던 하루를 보낸 다음 남편이 집안에 발을 들이자 물건을 집어 던지며 보여준 표정과 눈빛은 집안의 잡귀를 쫓아내는 부적으로 써도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뿐만 아니었다. 쇼핑센터의 계산대에서 남편이 꿈지럭거려서 순서가 뒤로 밀렸을 때의 분노와 욕설의 콤비와 남편이 꼭꼭 숨겨 놓은 생명과도 같은 게임기를 발견했을 때의 섬찟한 표정은 간담이 서늘하게 만들었다.




얼굴이 점점 버얼~겋게 달아 오르고 있다. 한지민은 '머리에 스팀이 돈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이렇게 영상으로 표현해주었다.


남편이 숨겨 놓은 게임기를 발견하고 분노에 치밀어 오른 아내의 모습. 나는 이 장면, 정말 무서웠다.


나는 한지민의 이런 연기를 보며 마치 이 작품을 통해 진짜 변신이란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아직 미혼인 한지민이 보여주는 이토록 걸출한 생활연기를 보며 이 배우가 갖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 또한 생각할 수 있었다.


'아는 와이프' 한지민 is 뭔들, 12년 넘나드는 변신 끝판왕


이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또 하나의 아주 중요한 인물은 강한나가 연기하는 이혜원이다. 혜원은 모든 남자들에게 로망인 새하얀 피부와 긴 생머리, 그리고 첼로를 전공하는 음대생의 조합을 모두 갖춘 캠퍼스의 여신이다.


여자들에게 교회 오빠가 있다면 남자들에겐 음대 여학생이 있다. 단아한 외모, 백옥같은 피부에 가녀린 손가락으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연주하는 저 몽환적인 모습은 여신 그 자체이다.


게다가 주인공인 주혁에게 호감을 갖고 있으며 먼저 데이트를 제안하기까지 한다. 주혁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데이트를 펑크 내야만 했고 때문에 지금은 괴물로 진화한 아내 주연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이 드라마 2회에서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의지로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아 데이트에 응하여 결국 아내가 주연에서 혜원으로 바뀐 장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 방영을 앞둔 3회에서는 어떤 내용이 전개될까? 예고편으로 잠깐씩 보여준 장면에서 애써 외면하고만 싶었던 주연을 결국엔 운명적으로 만나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캠퍼스의 여신이었던 혜원이라고 한들 결혼생활의 풍파로 인해 괴물로 변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결국 내 배우자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변하게 만드는 것은 살아가는 환경, 그것도 나에게서 비롯된 환경 때문임을 앞으로 보여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살아가야만 하는 생활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현실의 생활에서 과거의 아련한 추억 속에서나 찾을 수 있는 환상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ps. 한지민의 납량특집 연기를 보며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또 하나의 부인이 있다. 내가 요즘 가장 즐겨보는 웹툰이자 내 블로그에서도 소개한 적 있는 ‘육아부부의 사야이’에 등장하는 작가의 부인이다. 두 사람 모두 집안에서 속썩이는 남편들 때문에 무섭기 그지없는 괴물로 진화되었다. 어째 한지민의 모습과 비슷하게 매칭되는 것 같지 않은가?



Posted by sni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