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툴바


한나라당이 드디어 당명을 바꾼다는 뉴스와 함께 역대 당명변경 사례에 대한 뉴스를 기다렸는데 세계일보 기사에서 잘 정리를 했다.

신장개업 하려는 한나라… 성공 전례 있나

하지만 정리는 잘 했는데 디테일이 떨어진다. 기사를 보면 당명을 바꿨던 모든 경우가 실패했다는 것처럼 나오지만 결코 그렇진 않다. 하나씩 살펴보면

1996년 총선을 앞두고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꾼 것, 그리고 과반 실패라는 표현을 썼는데 당시의 신한국당의 선거결과는 압승이었다. DJ가 정계복귀 후 새로 만든 새정치 국민회의는 문민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사상최초로 야당으로 원내1당이 될 것이란 예상까지 있었다. 이는 신한국당의 실패가 아닌 새정치 국민회의의 참패라고 표현해야 옳다. 당시 새정치 국민회의가 총선에서 패한 가장 큰 이유는 야권분열이었다. 새정치 국민회의에 합류를 거부했던 노무현, 김원기, 이기택, 이부영 등은 민주당이란 이름을 계속 유지했고 결국 그들은 궤멸됐다. 그리고 새정치 국민회의까지 함께 침몰시켰다. 그리고 일년 후, 민주당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조순, 이기택, 이부영, 제정구, 이철 등은 신한국당에 합류하여 한나라당을, 노무현, 김원기, 김정길, 유인태 등은 새정치 국민회의에 입당하였다.

결론: 1996년 신한국당 개명은 실패가 아닌 성공이었다.

한나라당으로의 개명이야말로 실패의 첫번째 사례였다. 1996년 총선 선대위원장으로 주가가 오른 이회창 의원. 1997년 신한국당 대선경선에서 맞수 이인제 경기지사를 꺾고 대선후보가 된다. 하지만 아들 병역비리, YS의 아들 김현철 비리, 악화된 경제, 그리고 당내에서의 후보 흔들기(당시 후보 흔들기의 대표주자가 서청원이다. 훗날 서청원이 어떤 정치적 행보를 걸어왔는지 찾아보길. 기가 막힌다) 등으로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결국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로 한 대선캠프에선 YS 인형 화형식을 하는 등(이때 YS가 진노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YS와 완전히 결별을 고한다. 그리고 민주당에서 합류한 인사들과 함께 한나라당을 창당, 조순 총재-이회창 후보 체제로 대선을 임한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이미 DJ에게로 넘어갔고 결국 이회창 후보는 아깝게 대선에서 첫번째 패배를 하게 된다.

결론: 배신의 정치 첫번째. 한나라당으로의 개명은 실패~!

새천년 민주당으로의 개명. DJ집권 후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는 총풍, 세풍 등의 정치탄압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는 야권의 유일한 구심점이 되어간다. 결국 이회창이라는 괴물은 DJ가 키워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맞이한 총선. 한나라당은 영남지역에서 온갖 몹쓸 지역감정 부추기기를 하며 선동하였고(노무현을 떨어뜨린 허태열이 그때 무슨 소릴 지껄였는지 찾아보라) 결국 영남 싹쓸이로 가까스로 원내1당의 자리를 유지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총선을 지휘한 이회창 총재의 대세론은 점점 굳어간다. 당시 총선은 이회창 총재의 존재감 + 영남 지역감정 부추기기의 결과였고 원내1당을 차지하며 승리한 듯 보였으나 그 본질은 패배였다. 반대로 새천년 민주당은 이인제 영입효과로 충청, 강원에까지 지지기반을 넓히는데 성공했고 수도권에서 한나라당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많은 의석을 가져갔다. 그리고 양당의 상반된 결과는 고스란히 2002 대선 때 부메랑이 되어 돌아갔다.

결론: 새천년 민주당의 개명. 실패가 아닌 절반의 성공

열린우리당으로의 개명은 달리 언급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과반 턱걸이라는 수줍은 표현을 쓰며 이 기사의 논지를 '당명개정은 곧 실패의 지름길'이라는 식으로 몰아가려하지만 열린우리당의 17대 총선 승리는 역사에 기록될만큼의 대승이었다. 굳이 턱걸이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찾아야 한다면 이 역시 진보세력의 분열이다. 열린우리당-민주당으로 여권은 분열했고 민노당마저 이들의 표를 갈랐다.

결론: 열린우리당의 압승

대통합 민주신당으로의 개명, 그리고 민주신당으로의 개명은 자중지란, 분열의 효과가 얼마나 큰 비극을 불러 일으키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공식에도 정확히 부합한다. 당시 대혼란에 빠진 열린우리당의 의원들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탈당을 아주 집요하게 요구했고 여권의 분열은 그들의 지지자들에게 실망감을 건네며 등을 돌리게 하였다. 나도 그랬었다. 특히 정봉주 전 의원의 표현대로 탄핵 정국 덕분에 금뱃지 달았던 17대 탄돌이들이 노대통령을 향해 독설을 퍼붓는 모습은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훗날 정봉주 전 의원은 이 부분에 대해서 눈물을 흘리며 깊이 뉘우치고 반성했다. 그의 저서, 21세기 잠언서인 달려라 정봉주에도 그 내용이 나온다)
 
그렇게 치뤄진 대선. 무려 기호 1번을 달고 500만표 차이로 대선에서 낙선한 정동영 후보. 그리고 패배감과 정신적 충격, 아노미 상태에서 불과 넉 달 후에 치뤄진 총선. 소속 국회의원들 조차도 헷갈릴 정도로 자주 바뀌는 당명을 국민들이 알턱이 있나. 그들의 분열은 국민들의 냉엄한 심판을 받아야 했고 4년 전 과반을 넘겼던 의석수는 반토막이 나고 말았다.

결론: 배신의 정치 두 번째. 분열과 배신은 참패를 불러온다.

자. 이제 2012년 2월부터 쓰게 될 신당은 위의 사례 중 어디에 속하는지 알아본다. 물론 1997년과 2007년의 경우에 해당된다. 신한국당-한나라당, 열린우리당-대통합 민주신당의 경우이다.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해질 것 같은 공포감 속에서 집권 여당의원들은 쇄신, 개혁의 미명하에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과의 결별을 재촉하였다. 그리고 결국 대선에서 초라하게 참패하고 말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소속당 의원들의 무지막지한 흔들기에도 꿋꿋이 버티는 뚝심을 발휘하였고 민주당을 탈당하지도, 당명을 바꾸지도 않았다. 그리고 당선되었다.

기사에서도 등장하듯이 박근혜 위원장은 어쩔 수 없이, 정말 어쩔 수 없이 당명을 바꾸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2004년의 고집도 이젠 통하지 않는다. 그렇게 대통령과 결별을 하였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 것인지. 새로 불리우게 될 그 당의 소속의원들이 더 잘알고 있을 것이다. 솔직히 그들은 야당이 되어도 상관없다.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느냐 못하느냐가 중요한 것 뿐이다.

PS 1. 오늘 오전에 당명개정한다는 뉴스를 보고 쾌재를 불렀다.
이제 드디어 잃어버린 50년 같았던 5년의 세월을 끝낼 수 있겠구나 하는 반가움에. 여기엔 대전제가 따른다. 야권은 반드시 협력해야 한다. 분열의 고통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 더 이상 국민들에게 느끼게 하지 말라.

PS 2. 2004년의 천막쑈와 2012년의 비데쑈는 차원이 다르다.
박근혜 위원장이 2004년의 고집을 피울 수 없는 이유는 좀 더 처절하고 현실적이다. 그때와 지금의 결정적 차이는 야당이냐 여당이냐의 것이다. 당시 천막당사 쳐놓고 TV에 나와 눈물 질질 짰을 땐 야당으로서의 견제심리, 그리고 장년층 이상의 노무현과 그 추종세력 혐오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한나라당에게 무려 121석을 안겨 준 것이었다. 그때 박근혜의 선택은 당연히 죽을 땐 죽더라도 한나라당 깃발 품에 안고 죽는 것처럼 보여야 효과적이었다. 그때는 야당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지난 4년간 가카가 개판쳐 놓은 이 나라. 우리 잘못한 거 알지만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눈물 질질 짜봐야 먹히지 않는다. 우리 잘못했으니까 한 번 더 기회를 달라? 이건 말이 안되고 양심도 없는 거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연말에 저를 대통령까지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호소를 한다? 그건 더더욱 먹히지 않는다. 이런 여러가지 현실적인 복잡한 사정때문에 박근혜는 어쩔 수 없이 당명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바꿔야 하는 것이다.

PS 3. 박근혜의 정치적 소명은 2004년에 천막당사쇼로 121석을 건진 것, 그리고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선거사에 길이 남을 압승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끝났다고 봐야 한다. 한국 정치에서 박근혜가 해야 할 역할은 더 이상 없다.
저작자 표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sni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