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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에서 다시 나오기 힘든 유형의 선수를 한 번 추려보았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다시 나오기 힘든 ‘기록’이나 ‘기록을 가진 선수’가 아니라 ‘유형’이다. 이 유형에 대해 설명하자면 우선 NBA를 비슷한 예로 드는 게 좋을 것 같다. NBA 역사에서 다시 나오기 힘든 유형의 선수들로 매직 존슨, 래리 버드, 찰스 바클리, 레지 밀러 등을 꼽는다.

매직 존슨은 1) 2미터가 넘는 장신의 2) 포인트 가드였으며 엄청나게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한 송곳 같은 패스, 게다가 득점력까지 갖추고 있었으며 때론 센터 역할까지도 수행했다. 중요한 점은 존슨의 포지션이 볼 배급을 최우선으로 하는 포인트 가드였다는 것이다.

또한 래리 버드는 백인으로서 스피드, 점프 등 신체적 조건은 흑인 선수들보다 뒤졌지만 아주 빠른 두뇌 플레이로 코트 전체를 지배했다. 찰스 바클리는 2미터가 안되는 단신임에도 그의 포지션은 파워 포워드였고 2미터 10센티가 훨씬 넘는 괴물들이 버티는 골 밑에서 리바운드를 척척 잡아냈고 몸싸움에서도 압도했다.

레지 밀러는 공을 소유하는 시간에 비해 훨씬 많은 득점을 하는 유형이었다. 1) 볼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스크린을 타고 돌아다니며 순간적인 노마크 찬스를 만들고, 2) 패스를 받아 빠르게 3점슛을 날리는 오프 더 볼 무브(Off the ball move)의 역대 최고 선수가 바로 레지 밀러이다. 아쉽게도 요즈음의 농구는 죄다 마이클 조던 같은 전천후 스윙맨만을 추구하는 것 같아 레지 밀러와 같은 독특한 볼거리를 주는 선수를 찾아보기 매우 어렵다.


선정기준은 다음과 같다.


1. 통산 기록이나 깨지기 어려운 단일 시즌의 기록을 보유한 선수보다 그 선수만의 독특한 유형을 먼저 생각했다. 앞서 언급한 NBA를 예로 들자면 마이클 조던의 어마어마한 기록을 깨는 선수는 다시 나오기 매우 어렵겠지만 조던과 비슷한 유형의 선수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등이 바로 조던과 매우 비슷한 유형이다. 이 기준으로 선정했을 때 최고의 통산기록을 보유한 송진우, 양준혁, 장효조 등의 선수는 비슷한 유형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선정되지 않는다. 도저히 깰 수 없는 단일기록과 통산기록을 모두 보유한 선동렬, 이승엽 역시 마찬가지다. 선동렬은 정통파 우완의 강속구 투수, 이승엽은 좌타자 슬러거라는 점 이외의 독특한 점을 찾을 수 없다. 만일 이승엽이 이대호, 혹은 최형우처럼 홈런왕이면서 동시에 타격 1위의 타이틀까지 차지해 봤다면 이 기준에 부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승엽은 타격 2위까지는 해봤지만 타격 1위를 해본 적은 없었다. 


2. 성적이 좋은 것도 중요하지만 단일 시즌의 성적보다 통산 성적이 얼마만큼 유지되느냐를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한 선수의 ‘유형’을 판단할 때 10 시즌은 아니더라도 5시즌까지는 놓고 판단을 하는 게 당연하다.


이와 같은 기준으로 선정한 선수는 투수 3명과 타자 2명이다. 투수는 최동원과 이강철, 그리고 임창용이고 타자는 이만수와 이종범이다.


1. 최동원. 불멸의 투수. 지치지 않는 최고의 철완



투수 최동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한국시리즈 혼자 4승(그것도 3완투승, 그리고 1구원승과 1완투패)의 전설로 남은 대기록,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 사상 역대 최고의 투수전으로 기억되는 선동렬과의 세 번의 진검승부일 것이다. 하지만 최동원의 진가는 다른 여러 곳에서 곳곳이 드러나는데 가장 경악할만한 기록은 데뷔 년도인 1983년부터 1987년까지 무려 5년간이나 200이닝 이상을 던진 것이다. 매년 수많은 기록들을 양산하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유독 많은 이닝을 던지는 연투능력의 기록은 풍성해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최근 10년간의 한국 프로야구 기록을 살펴보면 20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는 해마다 3명 남짓하거나 아예 나오지 않는 시즌도 꽤 된다. 그 마저도 대부분의 경우는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 선수들이다. 앞으로도 최동원처럼 5년 연속, 아니 3년 연속이라도 200이닝 이상을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대기록 중에 얻어진 두 번의 20승, 한 번의 MVP 수상과 한 번의 다승 1위와 탈삼진 1위 기록은 덤이었다. 항상 최동원을 우상이자 넘어야 할 거대한 산으로 생각하며 최고의 투수를 꿈꾸었던 역대 최고의 투수 선동렬마저도 갖고 있지 않았던 최동원의 연투능력을 부러워했었다.


2. 이강철. 한국 야구역사상 가장 꾸준했던 최고의 언더핸드 투수



이강철에 대해서는 지난 글에서 자세하게 언급한 적이 있다. 이강철이 남긴 많은 진기록 중 가장 뛰어난 것은 10년 연속 두 자리 수의 승리와 세자리 수의 탈삼진을 기록한 것이다. 이 기록은 이강철이 나타나기 전에도, 그가 은퇴하고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도 깨지 못하고 있는 대기록이다.


이강철에게서 찾을 수 있는 매우 독특한 점은 바로 언더핸드 투수로서 이런 대기록을 수립하였다는 것이다. 사실 1990년대만 해도 팀 전력의 중심이 되는 정통파가 아닌, 언더핸드 투수들이 꽤 있었다. 쌍방울 레이더스의 성영재, 김기덕은 선발로 두 자리 승수를 올려주었고 삼성의 박충식은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에이스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그 외에 해태, 삼성의 임창용, 롯데, 삼성의 박석진, 현대의 조웅천 등 기라성 같은 언더핸드, 사이드암 투수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2010년대 이후에 팀 전력의 중심이 되는 언더핸드, 사이드암 투수는 찾아보기 어렵다. 바로 이 점에서 이강철이 세운 10년 연속 두 자리 승리, 세자리 탈삼진은 더더욱 깨지기 어렵고 이와 비슷한 기록을 내세울 언더핸드 투수는 쉽게 등장하진 못할 것이다.


3. 임창용. 한국판 사이드암 금강불괴



이강철과 같은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 또 한 명의 비 정통파 투수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야구 역사상 최고의 사이드암 투수인 임창용이다. 사이드암 투수로서 시속 150 km 이상의 강속구를 구사하고 선발과 마무리를 모두 오가며 최고의 활약을 하였을 뿐 아니라 일본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까지도 진출한 임창용 역시 두 번 다시 나오기 어려운 유형의 투수라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이강철에겐 없었던 것이 임창용에겐 있었는데 프로야구 역사를 통틀어 가장 혹사를 많이 당한 선수 중 한 명이라는 것이다. 임창용은 마무리로는 3년 연속 130이닝, 선발로는 200이닝까지 던진 적이 있었고 30대 이후까지 혹사를 당했으나 그의 구속은 언제나 시속 150 km 이상을 유지했다. 30대 이후까지 저토록 혹사를 당하고 완전히 간 퇴물이라는 평가까지 받았으니 일본 프로야구로의 도전 역시 당연히 실패할 거라 생각한 수많은 야구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로 하고 무려 시속 160 km가 넘는 광속구와 뱀직구를 뿌려대며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수호신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정말 놀라운 것은 그가 20대 초반부터 혹사라는 혹사는 다 당하고 난 뒤 30이 훌쩍 넘어서 시도한 도전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 후 시카고 컵스에도 입단하여 빅리그의 마운드도 밟아 보았고 이 후 다시 국내 프로야구에 복귀하여 삼성, KIA에서 다시 활약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놀랍기 그지 없다.

그가 남긴 눈부신 기록도 기록이거니와 사이드암 투수로서 이런 어마어마한 광속구를, 그것도 엄청난 혹사를 견뎌내고 마흔이 훌쩍 넘긴 나이까지 던질 수 있는, 그렇게 한국시리즈에 등판하여 우승까지 다시 경험할 수 있는 투수는 다시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4. 이만수. 역사상 최초의 타격 3관왕이자 유일한 포수 타격왕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포수가 누구인가? 라는 물음을 사람들에게 던질 때 수많은 의견들이 나오겠지만 결국 두 사람으로 수렴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바로 이만수와 박경완이다. 각자의 논리와 근거를 내세우며 누가 더 낫다고 이야기들 하는데 타격은 이만수가, 포수, 수비수로서의 능력은 박경완이 더 낫다고들 이야기한다. 적어도 타자로서의 이만수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를 수놓았던 숱하게 많은 포수들 중 단연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다른 이유를 다 빼고서라도 35년이 넘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에서 포수로서 유일하게 타격 1위를 해 본 선수가 바로 이만수(물론 타격왕 밀어주기라는 지저분한 꼼수가 있었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뿐이라는 점이다.


정말 놀라운 기록은 이만수가 1984년 한 시즌에 타격 3관왕(타율, 홈런, 타점)의 대업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통산 세 번의 홈런왕을 차지하면서 동시에 타격 1위도 했다는 것인데 이게 왜 대단한 기록인가 하면 이후 22년이 지난 2006년이 되어서야 롯데의 이대호가 한 시즌 타격 3관왕을 하게 된다. 비록 한 시즌에 동시에 차지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타격과 홈런에서 1위를 기록해 본 선수는 한국 프로야구 통산 5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만수, 김기태, 김태균, 이대호, 그리고 최형우 뿐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만수가 얼마나 대단한 기록을 세웠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포수는 전체 야수 중에서 가장 체력소모가 심한 포지션이며(마스크, 프로텍터, 레그가드, 그리고 샅보대까지 착용하고 그 더운 삼복 더위의 여름에 앉았다 일어나는 행동을 한 경기에 몇 백 번 이상 반복해야 한다) 그라운드의 야전 사령관이라는 별명답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타격성적이 좋지 않아도 비난 받지 않는 유이한 포지션이다. 또 하나의 포지션은 수비범위가 가장 넓은 유격수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만수 이후 그 어떤 포수도 타격1위를 차지해 본 적이 없고 이만수의 통산타율 역시 0.296으로 역대 포수들 중 최고이다. 아마 이만수처럼 1500 경기 가깝게 출전하며 이만수만큼의 통산타율을 기록할 수 있는 포수는 앞으로 나오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한다.


5. 이종범. 역사상 최고의 5툴 플레이어. 유격수 유일의 시즌 MVP




이종범에 대한 묘사의 시작은 앞서 언급한 이만수에 대한 묘사와 비슷하다. 이종범이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유격수라고 이야기하기엔 어려울지 몰라도(그가 유격수로 활약한 시기는 KIA 타이거즈가 아닌 해태 타이거즈의 5년간이다) 역대 최고의 유격수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어야 하는 선수 중의 한 명임은 분명하다. 많은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그 중 단 한 가지의 이유를 댄다면 역대 유격수 중 유일하게 시즌 MVP를 수상한 선수가 바로 이종범이다.

야구천재, 바람의 아들, 야구는 이종범, 완벽한 5툴 플레이어 등등 그에 대한 너무도 많은 찬사가 있겠지만 나는 이종범이라는 야구선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싶다.


한국 프로야구의 볼거리를 한 단계 격상시켜준 선수


해태 타이거즈 시절의 이종범은 이 말에 딱 부합하는 선수였다. 이종범 이전과 이후에도 이종범만큼 재미있는 볼거리를 남겨주는 선수는 단언컨대 없었다.



먼저 이종범의 5툴 플레이어로서의 놀라웠던 면모를 현장에서 그를 지켜보던 해설위원, 선수들의 시각에서 살펴보면 먼저 이종범의 친한 친구이자 LG 트윈스의 에이스였던 이상훈은 이종범을 잡아내면 한 이닝을 마친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할 정도로 이종범을 잡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토로한 적이 있다. 하일성 해설위원의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야구해설 시간에 이종범을 잡아내면 타자 두 세 명을 함께 잡아낸 것과 같다는 이야기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당시 해태의 감독이던 김응룡 감독은 10승 투수 두 명과도 바꾸지 않는 보배라는 극찬을 했고 1993년 이종범의 신인 때 열렸던 한국시리즈에서는 이종범 혼자 다 해낸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고 인정했다.



TV를 통해 관람하는 야구팬의 입장에서도 이종범의 야구는 사람을 미치게, 혹은 질려버리게 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이종범에게서만 볼 수 있었던 1번 타자의 애국가 홈런이란 것이 있었다. 경기를 시작하는 애국가의 사이렌의 여운이 아직 완전히 가시기 전 선발투수가 초구 스트라이크로 던진 공을 그대로 받아서 솔로 홈런을 쳐서 넘겨버려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홈런이나 안타를 맞기 싫어서 볼넷으로 1루를 허용해주면 그때부턴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리는 것이었다.



뛸 듯 하지만 뛰지 않고 뛰지 않을 듯 하지만 또 뛰어서 완벽히 타이밍을 빼앗는 도루를 그것도 2루까지만이 아닌, 3루까지도 해버리는 것이었다. 이병훈 해설위원의 표현처럼 당시 프로야구 팀의 모든 배터리를 창피하게 만드는 선수가 바로 이종범이었다.


만일 이종범을 출루 시킨 다음에 벌어지는 최악의, 하지만 너무도 자주 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다음과 같다. 1루를 밟은 이종범이 투수와 타자, 그리고 내야진의 신경을 최대한 건드린 다음 2루까지 도루에 성공하면 그 다음 타자가 1루타만 쳐도 당연히 홈까지 파고 들어서 득점을 했고 만일 안타를 못치고 내야 땅볼만 쳐주어도 그의 엄청나게 빠른 발이 이미 3루를 돌아 홈까지 오게 되는 식이었다. 즉, 이종범을 1루에 내보내면 단 한 개의 피안타도 기록하지 않았지만 1점을 헌납하며 승리의 분위기를 완전히 해태에게 넘겨주는 것이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한 시즌을 가장 압도적으로 보낸 타자를 꼽는다면 거의 만장일치로 1994년의 이종범을 꼽는다. 그 해 그는 4할 타율에 가장 가까웠던 0.393의 타율로 타격 1위를 차지했고 196개의 안타와 84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196개의 안타는 무려 20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그의 고교후배인 서건창에 의해 깨지게 되고 84개의 도루는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다. 그의 수비 포지션이 바로 유격수였음에도 이 같은 기록을 남겼다는 것이다. 역대 유격수 중 타격 1위를 차지한 선수는 1994년의 이종범 단 한 명뿐이었고 그 기록은 23년이 훌쩍 넘어버린 2017년, 그와 한 팀에서 선수생활을 한 KIA 타이거즈의 김선빈이 이었다. 역대 최고의 5툴 플레이어로서의 가치도 대단하지만 유격수로서 이와 같은 5툴 플레이어의 활약을 보였다는 점에서 아마 이종범과 같은 선수가 다시 나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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