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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 중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지만 대단히 극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 중 남자 두 명인 하후패, 순의는 지난 포스트에서 알아보았고 이번 포스트에서는 여자 두 명인 조절(曹節), 그리고 문소황후 견씨(甄氏)의 생애에 극적인 요소를 살펴본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몇몇 여인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들은 미인계의 대명사인 초선, 유비의 부인인 미부인과 손권의 동생이자 유비의 부인이 되는 손부인까지 세 명이다. 이들 중 초선은 가공인물이고 나머지 여인들의 행적은 오로지 유비만을 생각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각색되었으나 정사의 기록에 의하면 모두 허구이다. 미부인은 유비가 서주에 살던 시절에 함께 살았으나 서주를 빼앗긴 이후 난리통에 도망친 후의 행적이 묘연하고 손부인은 유비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지도 않은 여인이었다. 이처럼 철저히 소설적인 재미를 위해 각색된 여인들이 아닌, 실제 정사에서의 삶이 훨씬 더 극적이고 역동적인데 어지간한 삼국지 독자들 역시 잘 알지 못하는 두 여인이 바로 지금부터 소개하는 헌목황후 조절과 문소황후 견씨이다. 

 

4. 조절(曹節). 조조의 딸, 조비의 동생. 하지만 헌목황후로 남고 싶었던 여인

 

권력의 상징인 옥새를 두 손에 들고 회한에 가득찬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인. 옛다~! 이놈들. 이게 그렇게 탐나더냐? 가져가라~! 하늘이 너희를 돕지 않으리라~!


조절은 조조의 딸이자 조비의 이복 여동생, 그리고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의 황후인 세 가지의 정체성을 가진 여인으로 기억된다. 헌제는 무려 두 번이나 자신의 부인들이 조조의 부하들에게 끌려가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아야만 했는데 이에 조조는 더 이상 황제의 측근에게서 해치려는 계획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아예 자신의 딸을 황후로 만들어 헌제의 품에 안긴다. 그 목적이야 물론 헌제의 감시와 자신에게의 보고체계 확립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조조와 조절, 그리고 헌제의 관계는 나의 부족한 글로 설명하는 것보다 고우영 화백이 남긴 불후의 명작인(최고의 삼국지 학자로 유명한 임용한 박사 역시 고우영 화백의 삼국지만큼 잘된 작품은 없다고 극찬을 거듭하였다) 만화 삼국지에 매우 자세히 묘사되어 있으니 여길 참고하는 게 낫겠다. 

 

나라에서 으뜸 가는 여인이 개처럼 끌려가는 모습을 살아있는 황제는 눈앞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그는 조조만 아니었다면 적어도 나라를 재건할 순 없었어도 제몫을 다하는 황제로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조에 의해 불행과 불명예의 삶을 살고야 말았다. 

이토록 기세등등한 조조 역시 황제만은 건드리지 않았으나 그의 후손들인 황제들은 개보다 더 처참한 꼴을 당하게 된다. 무서운 인과보응의  진리여~!

 

허수아비 황제로나마 그럭저럭 평온한 삶을 살고 있던 헌제의 인생에 마지막이자 가장 큰 풍파가 다가오기 시작한 때는 바로 평생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조조의 죽음 이후였다. 조조의 대를 이어 위왕(魏王)이 된 조비는 자연스럽게 왕좌 이상의 자리를 탐냈고 이에 수십년 간 허수아비 황제로 살아온 헌제를 축출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부터 어쩌면 조조의 딸로 태어나 조용히 황후까지 올라 조용히 살다 갈 수 있었던 조절의 이름이 빛나기 시작한다. 

 

조조와 그의 일당들에 의해 황제가 된 후 허수아비의 삶을 살았던 헌제. 하지만 그의 마지막을 사랑과 절개로 지켜준 여인은 너무도 역설적이게도 조조의 딸이었다. 

 

만화에서는 이 정도까지 묘사되어 있으나 정사의 기록을 보면 조절의 행동은 더욱 더 처절하고 매섭기 그지없다. 아무리 저항해도 기어이 옥새를 빼앗아 가겠다는 조비의 부하들을 더 이상 상대할 수 없게 되자 결국 옥새를 난간 아래에 집어 던지며 "하늘이 절대로 너희를 돕지 않을 것이다!"라고 저주까지 내리며 통곡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 모습을 지켜본 조비의 부하들 역시 모두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주위가 숙연해졌다고 전해진다. 


결국 정해진 수순대로 헌제는 조비에게 양위라는 이름의 강탈을 당하며 산양공이라는 초라한 간판을 받고 궁에서 쫓겨났고 조절 역시 남편과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다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이렇게 역사상 최초로 선양, 양위라는 허울좋은 이름으로 새롭게 황제가 된 조비의 위나라는 자신들의 악행을 고스란히 돌려받으며 결국 45년 만에 선양, 양위라는 이름으로 멸망하고 만다. 그리고 조절은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말처럼 ‘하늘이 돕지 않는’ 그 나라가 멸망해가는 꼴을 똑똑히 지켜보다 남편이 죽고 25년 후에 남편을 따라간다. 

 

귀한 영상자료를 찾았다. 황제에서 폐위된 뒤 산양공이 된 헌제가 삶의 마지막을 보낸 곳에 있는 그와 헌목황후의 능, 사당을 여행한 분의 유튜브 영상이다. 14분부터 사당 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절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녀의 기록자체가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이를테면 생모 역시 조조가 거느린 수많은 첩 중 하나일 뿐 누구인지 제대로 알 수 없고 생모가 누군지조차도 알 수 없으니 다른 수많은 배다른 오빠나 언니들에 비해 주목을 덜 받고 자랐을 공산이 크다. 또한 생모를 알 수 없는 다른 자매들과 함께 아버지뻘 되는 헌제의 후궁으로 들어갔으니 다른 보통 집안의 딸들처럼 사랑다운 사랑한 번 못해보고 그저 운명의 파도에 휩쓸리듯이 아버지뻘 되는 남자의 첩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하였을 것이다(조절의 생년은 불확실하나 일찌감치 후궁으로 들어갔으나 나이가 찬 후에서야 귀인이 됐다고 하니 헌제와 많은 나이 차이가 나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결혼생활이 행복했을리 만무하다. 과거사로 미루어 볼 때 자신의 남편의 미래 역시 어찌 될지 눈에 훤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욕망을 채워줄 도구로 이용됐다는 원망 또한 가득했을 것이다.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간에 시작한 남편과의 결혼생활. 낮에는 용상에 앉아 조조와 그의 신하들의 꼭두각시로 살다 밤이 되면 침소에서 혼자 눈물 짓는 모습을 보며 큰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 여기에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여기에서 생긴 반발심까지 더해져 천애고아나 다름 없는 헌제를 지켜줘야 한다는 의무감까지 강하게 생겼을 것이다. 결국 정해진 수순대로 그녀는 폐위된 황제의 마지막 황후가 되어 죽을 때까지 남편과 함께 한, 그녀의 이름인 ‘節’다운 삶을 살다 생을 마쳤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헌제가 파란만장했던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때 헌목황후 조절이 그 옆에서 임종을 지켰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아마도 울먹이며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폐하. 정신을 차리시옵소서. 이 세상 사람들은 제게 역적 조조의 딸이자 조비의 동생이라고 손가락질하겠지만 이 몸은 언제까지나 폐하의 아내일 뿐이옵니다. 폐하. 영원토록 폐하를 사랑하며 함께 가겠사옵니다]


그로부터 25년 후 조절이 숨을 거두자 위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던 조환은 그녀의 장례를 한나라의 법도에 맞게 하라 명하였다고 한다. 조절이 숨을 거두기 전 옆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大漢)의 마지막 황후였다. 내가 죽거든 혹여라도 조씨들이 묻혀 있는 곳이 아닌 폐하의 옆에 묻어 달라]

 

5. 문소황후 견씨(甄氏). 세상의 가혹한 풍파를 맞아야만 했던 연민의 귀인(貴人)

 

문소황후 견씨는 후한을 멸망시킨 후 세워진 위나라 초대 황제인 조비의 황후, 즉 새로 건국한 나라의 초대 황후로 기억되는 여인이다. 세상에 새로 건국한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의 창업군주들은 어려서부터 비범한 능력과 함께 산전수전을 다 겪고 살아남은 대단한 인물들이 대부분이며 그들의 부인 역시 함께 고생을 헤쳐온 조강지처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중요한 예외가 바로 조비와 그의 황후인 문소황후이다. 조비는 아버지 조조가 평생동안 싸움터에서 일궈온 왕조의 자리에 마지막 돌 하나, 즉 황위찬탈이라는 의식 하나를 보태서 황제가 되었고 문소황후의 삶 역시 어릴적부터 남편과 함께 고생을 헤치며 살았던 조강지처와는 거리가 멀다. 표면적으로 보는 그녀의 삶은 오히려 귀한 집에서 태어나 귀한 집으로 시집가서 고생따윈 거리가 먼 삶을 살다가 다시 최고 권력자의 며느리로 몇 십년을 살다 결국 황후까지 오른, 귀인으로서의 삶을 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생애를 더 들여다보면 이보다 이 시대를 살았던 그 어떤 여인보다 더욱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문소황후 견씨는 대대로 2천석을 내는 중산국의 손꼽히는 명문이었고 아버지 견일은 상채의 현령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당시 2천석 정도의 집안이면 태수, 장군급으로 지방에서는 최고 권력자의 급이고 견씨는 이런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어릴적부터 총명했고 글읽기를 좋아했으며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했던 따뜻한 성품으로 여인으로 기록에 남아 있다. 귀한 집에서 귀하게 자랐고 게다가 총명하며 남에게 베풀기까지 좋아하는 이 여인은 심지어 미모까지 대단히 뛰어났다고 전해지고 있으니 그녀의 집안인 기주를 본거지로 삼고 있는 원소 가문 역시 이 여인을 알게 되어 결국 원소의 둘째 아들인 원희의 부인이 된다. 자신이 가진 것도 넘쳐나는데 거기에 더해 전국 최고 명문가의 며느리로 들어갔으니 이제 그녀의 인생은 오로지 귀하게 살다가 귀하게 죽을 일만 남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실력가인 시아버지 원소는 상대도 되지 않을 것 같았던 조조에게 대패하여 그만 죽게 되고 이때부터 원씨 가문의 멸문지화와 함께 견씨의 혹독한 운명의 장난 같은 삶이 시작된다. 원씨 삼형제는 단합을 해도 모자랄 판에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고 상속싸움을 하다 결국 삼형제 모두 조조의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되고 시어머니인 원소의 부인과 함께 저택에 숨어 있던 견씨는 조조의 아들인 조비에게 발견된다. 그리고 견씨의 미모를 보고 한눈에 반한 조비는 곧장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게 된다.

 

고우영 화백의 삼국지에도 조비가 견씨 부인을 취하는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집안, 재주, 미모까지 무엇 하나 넘치지 않게 살아왔고 살아갈 것 같은 여인은 이렇게 살기 위해 원수의 아들의 전리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조비가 첩이 아닌 정부인으로 맞아들였다는 것이다. 한때는 적이었던 몰락한 가문의 며느리였던 여인을, 그것도 처갓집과의 결혼동맹을 맺을 필요도 없을 당대 최고 권력자인 조조의 큰 아들이 정부인으로 맞았다는 것은 조비가 그녀에게 얼마나 반했고 또한 사랑했는지 알려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약탈한 집안의 부인이자 며느리로 살았을 그녀의 삶은 어땠을까? 기록을 살펴보면 일단 고부간 갈등따윈 전혀 없었던 듯하다. 오히려 시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종일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진심으로 걱정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집안에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기분으로 살아야 했을 것이니 의지할 수 있는 곳이라면 같은 여자인 시어머니뿐이었을 행동을 많이 보여준다. 게다가 남편인 조비에게 첩을 많이 두어 자식을 많이 가지라는 권유까지 해주었다. 이런 행동 역시 혹여라도 질투를 부린다는 핑계로 오갈 곳 없는 자신을 내치진 않을까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란 공산이 크다. 

 

최고 권력자의 집안에서 아들과 딸까지 낳고 별다른 풍파없이 살았던 견부인의 인생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은 시아버지였던 조조의 사후부터였다. 조조의 뒤를 이어 위왕이 된 조비는 6개월 후에 헌제를 쫓아내고 황위를 찬탈하기 위해 그와 견부인의 본거지였던 업성을 떠나 낙양으로 향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비는 위왕으로 즉위했을 당시엔 자신의 거처에서 시중들던 곽여왕이라는 여인을 정식부인으로 맞아들였고 견부인을 홀로 남겨두고 낙양으로 떠난 후엔 쫓아낸 헌제의 딸들을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제위에 오른 뒤엔 곽여왕을 귀빈으로 높여준다. 물론 조비와 곽여왕에겐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 시중을 들던 곽여왕은 지략이 보통인 여자가 아니었는데 조비가 조조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걱정하며 전전긍긍하던 시절에 곽여왕이 내놓은 계략이 결정적으로 맞아 떨어졌다고 전해진다. 예를 들어 조비가 둘만의 침실에서 견부인과 곽여왕에게 이런 저런 고민을 털어놓고 각각의 두 여인들에게서 위로와 조언을 받고 싶었다면? 그랬다면 어떤 대화가 오갔을까? 이 정도로 비유하면 좋을 것 같다. 견부인은 고금의 명언과 격언, 고사를 대며 도덕과 원칙을 잘 지키라는 반듯한 모범답안 같은, 하지만 급한 현실에 적용하긴 매우 어려운 조언을 남겼을 것이고 곽여왕은 방법과 표현은 저급하고 천박함까지 느껴지지만 급한 현실에 적용하기엔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최고의 계략을 내놓으며 조비의 눈을 번쩍 띄게 했을 것이다.  


결국 조비는 황제가 된 이후에도 끝까지 업성에 홀로 있던 견부인을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낙양으로 떠난지 1년이 지난 후 사람을 보내 견부인을 죽이도록 명하였고 견부인은 이렇게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 어릴적부터 그 누구보다 부족함 없이 자랐고 최고의 명문가에 두번이나 며느리로 들어가며 그 누구보다 귀하게만 살다 죽을 것만 같았던 그녀의 죄목은 바로 사랑이 식은 남편을 향한 푸념과 남편의 여인들을 향한 질투였다. 총명함과 아름다움까지 모든 걸 다 넘치게 갖추었던 여인의 마지막이라기엔 너무 말도 안되는 이유였다. 

견부인은 그렇게 자신을 약탈했던 남편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다행히도 그녀의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른다. 그리고 말도 안되는 이유로 핍박받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명예회복을 하고 세상을 계몽했다는 뜻으로 문소황후라는 시호를 올렸다. 

 

덧붙여서 문소황후의 아름다움은 당대 최고수준이었던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조비의 동생이자 시인으로 유명한 조식이 형수인 견부인을 몰래 사모했고 그런 나머지 그가 남긴 명시(名詩)인 낙신부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내용임이 거의 정설처럼 굳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아름다웠다는 문소황후의 자태는 대략 이 정도의 모습이었을까? 

 

문소황후 견씨의 삶에 문학적 상상을 더해보면 이런 이야기 구성도 가능하지 않을까? 우선 조비는 견부인을 아내로 맞아들이기 훨씬 전부터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조조와 원소는 젊은 시절부터 막역한 사이로 소문났었고 함께 대장군 하진을 모신 적도 있었으니 집안의 자제들 역시 서로 잘 알고 지냈을 것이다. 그중 둘째 아들 원희가 지방의 유력한 가문인 견씨 집안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이게 되는데 이 소식을 듣게 된 조비는 매우 착잡한 심정에 접어든다. 조비 역시 예부터 견씨 가문에 대단한 미모를 가진 딸이 있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으나 결국 원희의 아내가 된다고 하니 원소의 집안과는 상대도 안되는 자신의 집안을 탓하며 견씨를 아내로 맞아들일 수 없는 분노와 체념, 그리고 이와 함께 견씨를 향한 깊은 짝사랑은 더욱 커져만 갔을 것이다. 

 

관도대전 결과 원씨 집안은 멸문지화를 당했고 이때 운명처럼 견씨를 만나게 된 조비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음에 기뻐하며 결국 그토록 원했던 견씨를 아내로 맞게 된다. 이후 아들과 딸까지 낳으며 잘 사는 듯 비춰졌으나 조비는 그녀와의 결혼생활에서 쉽게 떨쳐낼 수 없는 열등감과 비통함을 느끼며 살게 된다. 그녀는 지방출신으로는 최고의 명문가에서 대단히 귀하게 자란 나머지 행동과 말투 하나하나에 귀티가 넘쳐 흐르는 반면 조비는 아버지가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으나 그녀가 가지고 있는 귀티와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몰래 혼자 있는 공간에서 훌쩍거리는 모습을 한 두 번 훔쳐본 것이 아닌데 이는 틀림없이 죽은 전 남편 원희를 그리워하기 때문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결국 결혼생활 내내 자신을 괴롭힌 이 알 수 없는 열등감의 끝은 대단히 비극적이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니 이제 자신이 이 세상의 지존임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야 했다. 그 첫번째 시행이 바로 황제가 되어 용상에 올라 자신이 가진 온갖 열등감의 발원인 아내를 죽이고 마음 속의 열등감을 없애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없어지지 않는 열등감 속에 조비는 괴로워하며 매일 죽은 아내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용서를 빌고 후회하게 된다. 

 

6. 조절과 문소황후.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한 두 여인이 보인 차이점


삼국지연의에서는 스쳐 지나가는 듯한 단역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중요하고 극적인 시기에 극적인 삶을 살았던 두 여인 조절과 문소황후 견씨의 일생과 그녀들의 삶에서 볼 수 있는 극적인 요소들을 살펴보았다. 두 여인의 공통점이라면 한 인격체로서의 독립된 삶을 자신들의 의지대로 살 순 없었고 그저 결혼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속박 속에서 슬픈 결말을 맞게 된 것이다. 한 여인은 최고의 자리에서 하루도 편치 못한 삶을 살다가 결국 수직강등하였고 또 한 여인 역시 편치 못한 삶을 살다가 최고의 자리에 오를 뻔하였으나 결국 남편에게 버림받고 죽임까지 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둘의 삶에서 중요한 차이점을 찾을 수도 있으니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비극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와중에서 단 한 번이라도 그 운명을 거부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도 쳐봤다는 것과 그 몸부림도 칠 수 없이 그저 눈물을 머금고 순순히 목숨마저 내놓아야 했던 태도의 차이일 것이다.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오빠의 부하들의 폭력 앞에서 조절은 ‘하늘이 네놈들을 돕지 않을 것’이라는 추상 같은 저주를 퍼붓는 장면을 상상하면 통쾌한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한다. 만일 이 여인이 조조의 정실부인의 아들로 태어났다면 옹졸하기 그지없던 오빠 조비에 비해 뭔가 큰일도 하며 훨씬 대담한 포부를 가진 후계자가 되진 않았을까 상상도 해본다. 

그 반면 견씨 부인은 부족할 것 없이 넘치는 집안의 딸로 태어나 재능과 미모, 마음씨까지 모두 넘치는 여인이었으나 두 번의 결혼이 누구보다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간 불행한 여인으로 만들고 말았으니 낙양에서 자신을 죽이러 보낸 남편의 부하 앞에 앙칼진 목소리로 ‘짐승만도 못한 놈! 젊은 시절 과부가 된 나를 탐해 결혼하여 아들딸까지 낳아 주었거늘 이제 와서 감히 누굴 죽여? 그래 이놈아~! 네 놈이 빼앗은 이 나라! 그리고 네 놈의 곁에 붙어먹은 놈들에게 내 피로 저주를 내리리라~!’하고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봤다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 또한 해본다.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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