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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강철에 대해 매우 감성적으로 잘 쓴 기사가 있어서 소개한다.


'2등' 이강철을 기억해야 하는 까닭


20세기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팀이었던 해태 타이거즈에는 말 그대로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즐비했는데 해태라는 팀의 컬러답게 특히 투수 쪽엔 팀을 넘어 한국 야구의 역사에 남을만한 투수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초대 에이스였던 이상윤, 최초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방수원, 설명이 필요 없는 선동렬, 한국시리즈의 사나이 김정수가 있었고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에는 문희수, 차동철, 신동수, 조계현, 이강철, 이대진, 임창용이 등장하여 투수진의 약화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렇게 나열한 투수들 중에서 ‘에이스’의 계보를 꼽자면 그래도 이상윤-선동렬-조계현-이대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기록면에서는 타 구단은 물론이고 해태 구단 내에서도 크게 뒤지지 않는, 오히려 우수했지만 에이스 대접을 받기엔 뭔가가 부족했던 비운 아닌 비운의 투수가 바로 이강철이었다. 


1990년대의 야구를 즐겨봤던 나에게 이강철이란 투수하면 떠오르는 매우 또렷한 기억은 네 가지이다.


1. 가장 곱상한 외모를 가진, 운동선수처럼 생기지 않은 운동선수. 그러나 놀랍게도 뛰어난 투수.
이강철만큼, 혹은 그보다 더 곱상하고 여리여리한 외모의 야구선수들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 외모의 소유자들 중 누구도 이강철보다, 이강철만큼 뛰어난 선수는 없었다.


2. 한국 프로야구 역대 가장 아름다운 투구폼을 가진 투수. 투구의 효율성 같은 걸 떠나서 미적 관점에서 봤을 때 가장 아름다운 투구폼의 소유자였다.
가장 역동적인 투구폼은 최동원, 조계현, 손승락. 가장 특이한 투구폼은 최창호, 송유석, 구대성. 가장 안정적인 투구폼은 선동렬, 김용수를 꼽고 싶다.


3. 불안불안하게 보이는 투수. 참고로 이강철의 별명은 홈런을 많이 맞아 홈런공장장이었다. 
선동렬같은 강속구도 없고 같은 언더핸드였지만 성영재, 김기덕같은 힘찬 투구폼도 아니라서 그의 투구를 보면뭔가 불안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승리를 거두고 매년 10승 이상을 거두는 정말 놀라운 투수.


4.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프로야구 전체 리그는 물론이고 팀내에서도 에이스의 대접을 받기엔 뭔가가 부족했던 투수.


이강철은 부상에 시달린 적도 없고 부진한 적도 없어서 기록이 꾸준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무려 10년이나 10승 이상과 세 자릿수 탈삼진을 기록하는 괴력의 소유자였지만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등의 굵직한 부분에서 1위를 차지한 적이 없었기에 그는 에이스라고 불리기엔 약간 부족한 억울한 면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강철은 역사상 가장 높은 마운드를 자랑하는 해태 타이거즈에서 1인자는 고사하고 (선동렬이 버티고 있으니) 2인자도 어려운(조계현, 게다가 후배인 이대진까지) 3인자 정도의 자리를 채웠던 투수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커리어 하이시즌인 1992년엔 무려 18승을 올리며 팀 내 최다승을 기록하였으나 정규리그 우승과 다승 타이틀은 송진우에게, 한국시리즈 우승과 화제성은 롯데의 고졸신인 염종석에게 빼앗기며 3위 정도의 투수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리고 1993과 1994년에는 팀의 입단 동기이자 라이벌인 조계현이 연속으로 다승왕을 차지하였고 1995년부터는 팀의 입단 후배인 이대진이 급성장하여 에이스가 되었다. 그 후 다시 팀 내 최다승인 15승을 거둔 1998년은 IMF로 모기업이 망하고 굳건했던 해태왕조가 무너진 첫해였다.


내가 꼽는 가장 아름다운 투구폼의 소유자 이강철. 1996년 한국시리즈에서의 모습이다. 삼진을 당한 타자는 박재홍. 1996년 신인으로 데뷔하여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30홈런-30도루의 신기원을 열었던 괴물 중의 괴물신인이었다.


좀 더 시야를 넓혀 1990년대의 한국프로야구 전체로 눈을 돌려보면 1992년엔 앞서 언급한 염종석, 그리고 1993년부터는 조계현과 빙그레의 정민철, LG의 이상훈, OB의 김상진, 현대의 정민태 등이 줄줄이 나타나 꾸준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던 이강철에게 쏟아질 시선을 분산시켜 버렸다.
이강철 또한 자신이 2인자도 아닌 3인자 정도에 머물러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 한 TV 프로그램에서 그는 늘 묻혀 있어서 약간 서운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래도 1996년에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고 결국 선수생활 중 받았던 가장 큰 상으로 기억되는 것이 기뻤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이강철이 선수생활 중 받았던 가장 큰 상이라고 스스로 언급했던 1996년 한국시리즈 MVP. 상대는 현대 유니콘스였으며 현대는 해태 이외엔 그 어떤 팀에게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내준 적이 없었다. 바로 그 팀을 상대로 이강철은 이런 위업을 달성한 것이었다.


비록 이강철이 현역시절엔 팀 내에서조차 2인자가 아닌 3인자 정도로 머물러 있었지만 그가 남긴 기록들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투수였는지 대변해준다. 먼저 이강철 이후에 나타난 그 어떤 날고 기는 투수도 데뷔시즌부터 10년간 꾸준히 두 자릿수의 승수와 세 자릿수의 탈삼진을 기록한 적이 없다. 같은 시대에 활약했던 조계현, 이대진, 정민철, 정민태, 심지어는 선동렬마저도 기록하지 못한 대기록이며 이강철이 은퇴한 후 12년이 지난 2017년의 시점에서 역시 어느 누구도 뛰어넘지 못했다. 이처럼 엄청난 기록을 남겼던, 하지만 가려진 이 대투수를 한 줄로 이렇게 평가할 수 있겠다.



한국 야구역사상 가장 꾸준했던 최고의 언더핸드 투수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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