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족-진정한 가족의 조건을 묻고 답하는 영화

오랜만에 참으로 괜찮은 한국영화 한 편을 감상했다. 2024년말에 개봉한 대가족이라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범상치 않은 설정에 엮인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 좌충우돌하는 재미를 다룬 코믹영화이자 가족영화를 표방하는데 정작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여운은 꽤 깊었고 가족의 의미, 역할, 조건 등을 몇 번이고 생각하게 만드는 뜻깊은 영화였다.
영화 초반에서는 극 중 중심인물의 소개부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는 세 부류의 인물들을 중심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각자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우연 같은 만남
함무옥이란 인물은 서울 종로 한복판에 위치한 평만옥이라는 만둣국을 파는 식당의 주인으로 그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두 가지 정체성이 있다. 하나는 몇 백 억짜리 건물을 몇 채씩이나 소유한 자수성가형인 입지전적인 인물로서 준재벌급으로 많은 돈을 번 자수성가의 삶이고 또 하나는 실향민, 즉 가족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정도의 입지전적인 인물들은 자기 경험을 절대화시켜 모든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남의 말은 안듣는 안하무인격인 경우가 많은데 정확히 그에 부합하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그의 말과 행동이 곧 법인 절대군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를 보여주는 장면이 영화의 첫 시작에서 정성껏 빚은 만두를 뜨거운 물에 삶아서 시식해 본 다음 별다른 말없이 ‘손님 받으라!’라고 짧게 지시하는 함무옥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의 입에서 내려지는 지시를 기다리는 식당 종업원들의 대비된 모습으로 나온다.

또한 그는 그만큼 지난한 삶을 헤쳐온 인물이기에 열심히 일한 대가로 벌어들이는 돈은 단순히 먹고 사는데 필요한 재화의 의미를 넘어서는 인생 그 자체나 다름없다. 이를 보여주는 장면은 영화 초반에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나는 화장지마저도 아껴쓰는 구두쇠 중의 구두쇠를 보여주는 화장실 안에 써붙여 놓은 '큰 거 4칸, 작은 거 1칸'이라고 써놓은 문구이다. 또 하나는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아들에게 본심과 다르게 호통을 쳐서 또 다시 좋게 헤어지지 못한 다음 한 잔 술에 기절해 병원에 실려 갔을 때의 모습이다. 외모나 성깔과는 달리 술을 한 잔도 못 마시는 그는 아들에게 호통을 친 다음 홧김에 한 잔의 술을 들이켰다가 그대로 쓰러져 무석의 전 애인인 가연의 병원으로 실려간다. 가연의 처치로 의식을 되찾은 다음 귀갓길에 그를 병원에 데려온 평만옥의 안주인인 정화가 택시를 타고 가자고 권유하지만 그는 당연히 듣는 체도 하지 않고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장면이다. 이처럼 함무옥이란 인물은 실향민의 신분으로 험한 세상에서 살아 남기 위해 악착같이 살며 많은 돈을 버는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돈을 써본 적도 없고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함무옥이란 인물을 설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정체성은 그가 실향민이라 같이 사는 가족이 없으니 가족을 향한 애착이 매우 남다른 인물이란 점이다. 이런 그의 행동은 영화 초반에 오래 전 속세를 떠나 불교에 귀의한 아들에게 하는 행동에서 나타난다. 영화 초반에는 무슨 이유인지 밝히지 않았으나 이미 속세를 떠난 아들에게 고조할아버지 제사에 늦는다고 호통을 치는 장면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아닌 한참 전세대의 어른이라 성함으로만 가족으로 기억될 정도로 거리감이 먼 고조할아버지의 제사에 늦었다고 호통을 치는 행위와 그토록 가족 간의 예의와 규칙을 중시하면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에게 박대하는 행위는 양자간에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면 제사시간에 늦었다는 건 핑계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함무옥의 진심은 제사시간에 늦은 아들을 땡중이라고 호통치는 것이 아닌, 이렇게 제삿날에서야 겨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얼굴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싫고 그 원인제공을 한 과거의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잠깐 스쳐 지나가느라 자칫 놓치기 쉬운 장면이 있는데 함무옥이 소유한 몇 백억자리 건물의 이름이 바로 그의 아들인 함문석에서 따온 문석빌딩이라는 사실이다. 겉으로는 속세의 인연을 끊은 아들과 서로 얼굴도 안보며 살 것 같지만 사실 그가 제삿날에 아들에게 호통을 치는 이유 역시 아름답게 헤어지지 못한 아들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일찍, 더 보고 싶은 그리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무석의 옛 애인인 가연의 입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함무옥에 이어서 중요한 인물은 이 영화에 펼쳐지는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된 행위를 한 인물인 함문석이다. 그는 젊은 나이에 불교에 귀의하여 여러 방송에도 출연하고 외모와 말솜씨도 좋아 그를 따르는 여성신도들도 많은 스님이다.

사정이 있어서 고조할아버지의 제사에 늦게 참석하여 아버지에게 땡중소리를 들어야 했고 해외에 나갈 일이 있어 다음 제사엔 부득이하게 불참하겠다고 밝히자 일언지하 거절당하는 등 아버지와는 매우 사이가 좋지 않아 보인다. 영화 초반에는 함문석이 속세를 떠나 불교에 귀의한 이유, 아버지와의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미루어 짐작컨데 아버지와의 불화가 속세를 떠난 직접적인 원인일 것이라 생각할 뿐이다.

함무옥과 함문석 부자에 이어 또 하나의 중심축을 이루는 인물은 민국, 민선 남매이다. 이들은 함씨 부자와 일면식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었어야 할 남매이지만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는 갑작스러운 불행이 덮치며 이들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천애고아가 된 초등학교 저학년의 남매 둘이서 쓸쓸하게 지키고 있는 부모님의 빈소. 찾아오는 조문객도 없고 화환도 없다.
그들의 삼촌임을 밝히는 인물이 찾아오는데 이들 남매에게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털어 놓는다. 그것은 바로 이들 남매가 자신에게 조카이긴 하지만 혈연으로 맺어진 것이 아니기에 남남일 뿐이고 진짜 아빠는 어딘가에 따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았기에 이 불쌍한 아이들을 양육할 이유가 없으니 보육원에 맡긴다는 사실이었다.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아온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보육원에서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그것도 모자라 동생 민선은 먼 나라로 입양을 보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오빠와 헤어질 운명에 처해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이들 남매는 결단을 내리는데 자신들의 친부가 누군지 찾아내어 남매간의 원치 않은 이별을 막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인연
민국과 민선 남매는 태어난 병원에 찾아가 흔히 말하는 출생의 비밀, 즉, 정자 기증으로 아이를 갖게 해준 아버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라고 알려진 함문석이란 사람의 옛 집인 평만옥 식당까지 찾아간다.
조그만 어린 남매가 무턱대고 찾아와 속세를 버리고 종교에 귀의한 아들의 자녀라고 밝히는 황당무계한 일이 눈앞에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 함무옥은 놀랍고 당황하기보다 기쁨이 앞서 당장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집으로 오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과 추궁, 아들 문석은 지난 과거를 회상하며 어쩌면, 정말 어쩌면 이 아이들이 자신의 아이들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인정한다.

아들의 긍정적인 답변을 듣자 기뻐 날뛰는 아버지의 모습. 바로 이 모습에서 이 아버지가 그리워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아버지가 진정 원하는 것은 내 핏줄, 내 새끼라고 부를 수 있는 가족과 함께 사는 삶이었던 것이다.

할아버지. 저희 좀 도와주세요라고 울먹이는 민국의 모습. 할아버지라는 말을 그토록 듣고 싶었던 무옥은 드디어 소원을 이루자 얼음장처럼 차갑고 단단해 보였던 그의 마음도 그만 녹아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이 예쁘고 어린 아이들, 더구나 내 핏줄인 손자와 손녀들이 하루아침에 키워준 부모를 잃고 천애고아가 되었고 헤어지기 싫어 친부를 찾아왔다는 사실에 아버지 무옥의 가슴을 더욱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족과의 인연이 사무치게 그리웠던 그에게 이 어린 것들을 거두어 키우지 않는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 아버지 무옥은 아이들의 부탁대로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게 키워주겠노라고 약속한다. 아들 문석은 아직 확실한 것이 아니며 절차라는 게 있다며 기쁨에 가득 찬 아버지를 만류해보려 하지만 이미 아버지의 귀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이때 등장하는 평만옥의 안주인이자 실질적인 무옥의 부인이나 다름없는 정화가 얼른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무옥의 생일인데다 어린 손자들까지 들어왔는데 잔치를 열어야 하지 않겠냐고. 그말에 동의한 무옥이 민국, 민선에게 뭘 먹고 싶냐고 묻자 민선은 소고기를 구워 먹고 싶다고 하자 무옥은 흔쾌히 가장 좋은 고깃집에 연락을 넣어 다같이 회식하자며 응한다.

평만옥 직원들의 첫 회식자리. 그토록 많은 돈을 벌어온 아버지 무옥은 직원들 회식도 한 번 시켜준 적이 없었다. 첫 회식자리를 통해 할아버지 무옥과 손자 민국, 손녀 민선은 하나의 식구(食口)가 된다. 식구라는 개념은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으로 작용한다.
이 회식 자리에서 아버지 무옥은 손자 민국이 따라주는 술을 한 잔 받아 마시며 감격한다. 속세를 끊은 아들 때문에 후사를 기대할 수 없으니 훗날 죽어도 술 한 잔 따라 줄 사람도 없을 것이라 비관하며 살았지만 더 이상 비관할 필요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넙죽 받아 마시고 필름이 끊기고 만다.

다음날 아침. 한 잔 술의 숙취에서 깨어난 무옥은 아이들이 보육원에 복귀했다는 말을 듣자 불같이 화를 내며 보육원에 찾아가 큰 소리로 민국, 민선 남매를 부르며 찾는다. 보육원의 수녀님들이 화들짝 놀라 그를 말리며 결국 경찰까지 부르는 일대 해프닝까지 벌어진다. 평소의 막무가내인 성격에 가족을 향한 그리움까지 불이 붙었으니 무옥으로서는 충분히 하고도 남을 행동이었다.

그 다음날 다시 보육원에 찾아가 이번엔 좀 더 신사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고자 노력한다. 며칠 있으면 유전자 검사 결과 혈연, 친족임이 판명날 것이고 그때 데려갈 아이들을 미리 데려가고 싶다며 애원했으나 보육원 입장에서는 씨도 먹히지 않을 이야기였다. 결국 아이들을 데려가진 못하고 보육원 주방에 들어가 아이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 궁금해서 살펴본 나머지 너무 부실한 음식에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그날 아침 마치 우연처럼 만나게 된 거래처인 식품납품업체 직원에게 평만옥에 가서 맛있는 식재료들을 운반해달라고 심부름을 시키고 아이들과 수녀님들에게 맛있는 만둣국을 대접하며 수녀님들의 마음의 경계심을 풀어준다.
이 영화에선 앞서 언급했듯이 함께 밥을 먹는 식구라는 개념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또한 그렇다.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혹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사람끼리도 만남의 장소엔 반드시 먹을 거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함께 밥을 먹던가 그게 아니면 하다 못해 차라도 한 잔 앞에 놓고 나서야 이를 매개체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즉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기계적 행위를 넘어선 하나의 의식(儀式)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무옥은 자신에게 들어가는 돈이라면 그토록 끔찍하게 아끼는 사람이 손자 손녀들에겐 다른 곳도 아닌 백화점까지 가서 옷을 사주고 다같이 옷을 사입자는 민선의 제안에 심지어는 자신도 비싼 양복과 코트까지 사 입는다. 그리고 평소 연모하지만 차마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살아가는 정화에게 멋있는 스카프를 건네며 오다가 주웠다며 몹시도 부끄러워한다.
아버지 무옥이 할아버지로 살아가는 꿈 같은 시간은 계속 이어졌다. 아침부터 보육원에 가서 민국과 민선이를 보러 가서 놀이공원에 다같이 놀러가자는 제안에 보육원 아이들 전원을 데리고 놀이공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수녀님과 둘이 함께 하는 점심시간에 자신이 한국전쟁 당시 전쟁고아였고 보육원에서 자란 사실을 밝힌다. 바로 여기에서 무옥이 민국, 민선 남매에게 그토록 애정을 쏟아붓는 또 하나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 역시 전쟁고아로서 보육원 생활을 하였기에 그 예쁜 어린 아이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어렵고 슬펐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다시 보았고 이 아이들에게 그런 슬픔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놀이공원에서의 하루를 보낸 후 문석이 왜 아버지의 곁을 떠나, 아버지를 버리고 종교에 귀의하게 된 과거를 보여준다. 놀이공원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마친 다음 버스를 타고 보육원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아들 문석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과거와는 너무 달라진 모습으로 살아가는 아버지를 보며 과거를 회상한다.

때는 1992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의료봉사 중인 문석은 어머니의 별세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하며 급히 귀국한다. 귀국 후 만난 처음 만난 아버지는 상복도 입지 않고 어머니의 장례도 치르지 않은 채 그저 평소와 똑같이 만두를 빚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장례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시신을 기증하면 병원에서 치러주겠다는 말을 들었다며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문석은 환멸을 느끼고 결국 속세를 떠나 불교에 귀의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었다.
한 식구(食口)라면 이 또한 한 가족이지 않겠는가?
영화의 중반을 넘어 종반으로 치달으며 여러가지 사건들이 다발적으로 발생한다. 먼저 아버지 무옥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그토록 굳게 믿었고 믿고 싶었던 손자 손녀인 민국과 민선의 유전자 실험 결과 혈연이 아니었음이 판명되었다.
상실감에 무너져 버린 아버지 무옥. 허탈감에 넋을 잃은 채 터덜터덜 거리를 걷다가 덤프 트럭에 치이는 사고를 당해 병원 응급실에 실려서 입원한다. 꿈속에서 부모님의 제삿상을 차려놓고 자신의 지난 삶을 후회하며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다. 죽어라 열심히 살았는데 자신의 옆엔 아무도 없다는 그의 독백속에 이 영화 전체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두 가지 물음을 던진다.
첫째, 누구나처럼, 혹은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각자의 삶이 스스로에겐 만족할만한 것일지 몰라도 그 삶속에서 잃은 것은 무언인지, 혹시 큰 이익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며 살아왔는데 그 희생의 대상이 가족의 사랑과 인연이라는 알고 보면 더 큰 가치는 아니었는지 묻고 있다.
둘째, 꿈속에서 만난 부모님의 말씀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짜 부모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는 것이다. 무옥의 부모님은 무옥에게 낳아 주기만 했지 키워주지 못했다며 무옥을 키워준 것은 이 세상이라고, 이 세상이 진짜 부모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아버지 무옥이 충격으로 쓰러져 입원하고 있던 그 시각, 민국과 민선 남매 역시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된다. 민국과 민선이 그들의 아버지라고 생각했던 문석과 혈연관계가 아니라고 판명이 난 사실을 민국이 정화와의 통화에서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때마침 보육원에 찾아온 덴마크 부부가 민선을 입양해서 데려가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민국은 민선에게 함께 화장실을 가자고 권유하며 그 자리에서 바로 보육원을 탈출, 옛 가족들이 함께 살던 집의 뒷산으로 도망친다. 민선에게는 할아버지도, 그의 아들인 민석 역시 우리 남매와는 상관없는 어른들이며 민선이 결국 먼 나라로 입양을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고 설명하며 위험천만한 선택을 하게 된다.
아이들의 위험한 선택으로 인해 아버지 무옥과 아들 문석, 정화와 보육원 수녀님들까지 산으로 총출동하여 아이들 찾기에 나선다. 하지만 민국과 민선은 어른들에게 잡히면 민선을 멀리 입양 보낼 거라고만 생각하여 더더욱 멀리 도망치려다가 그만 민국이 산에서 굴러 떨어져 부상까지 입고 만다.
야심한 시각까지 두 아이들을 찾으며 아버지 무옥과 아들 문석은 그동안 쌓아왔던 갈등을 풀고 화해하는 계기를 갖게 된다. 어릴 적 보육원에서 자랐고 실향민이기에 자신이 잘못되면 의지할 곳도 없는 외로운 처지였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오며 가족을 외면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코 그의 본심이 아니었다. 단지 그는 아내와 아들에게 사랑하는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그의 잘못이었기에 결국 그는 하나밖에 없는 혈연인 아들이 속세의 인연을 끊고 스님이 되었기에 대를 이을 수 없게 되었고 그렇게 살아온 과거에 깊은 회한을 느끼며 반성하였다. 무옥은 과거의 반성과 함께 혈연이 아닐지라도 함께 얼굴보고 살아가며 함께 밥을 먹는 식구(食口)라면 이 또한 가족이 아니고 무엇이겠냐는 깨달음까지 얻어 민국과 민선 남매를 찾는다면 자신이 아버지로 책임지고 키워주겠다며 다짐한다. 이 다짐이 얼마나 진심이 담겼는지 잘 보여주는 장면 또한 등장한다. 아이들을 정식으로 입양하려면 부모가 되어야 한다며 그간 연모하는 마음은 있었으나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정화에게 정식으로 청혼까지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민국과 민선이라는 평생 한 번 볼일도 없이 남남으로 살았을 수도 있던 남매가 갑작스럽게 등장하면서 무옥과 그의 가족에게 화해와 사랑, 그에 더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알려주게 된 것이다.

민국은 사고로 움직이지 못한 채 꼼짝 못하고 자칫 동사의 위험에 빠지게 된다. 동생 민선은 오빠의 모습을 보고 울먹이며 아무리 먼나라에 가서도 꼭 오빠를 찾아오겠다면 약속하며 어른들에게 자신들의 위치를 알려 가까스로 구조된다.

무옥과 문석 부자에게 구조되어 산에서 내려오는 와중에도 오빠 민국은 동생 민선만을 걱정했고 아버지 무옥은 너희 둘을 절대 헤어지게 하지 않겠다며 약속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한 독지가가 익명으로 수 백억이 넘는 재산을 기부했다는 뉴스를 들려주며 무옥과 정화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옥과 정화는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아들 문석과 가연, 새로운 자녀들인 민국과 민선 남매, 그리고 평만옥 직원들의 축하속에 동사무소에서 혼인신고를 올리며 정식으로 부부가 된 것이다. 무옥은 어릴 적부터 누구보다 힘든 삶을 헤치며 살아왔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살며 많은 돈도 벌었지만 그 많은 돈을 버는 동안 중요한 삶의 가치, 가족의 사랑을 잃었고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써야 좋을지도 모르며 살아왔다. 하지만 민국과 민선을 새로운 자녀로 맞이하며 자신이 잃었던 삶의 가치와 가족의 사랑을 되찾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그 많은 돈을 기부의 형식으로 세상에 베푸는 대신 더 큰 가치를 얻을 수 있는 방법까지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년의 시간이 흐른 후 수많은 젊은 남녀와 자녀들이 한 사찰에 모여든다. 그들은 바로 아버지 무옥과 정화 부부가 매년 새롭게 입양한 자녀들인데 무려 16명이나 되었다. 무려 16명의 아이들이 무옥과 정화라는 새로운 부모의 사랑 속에서 바르게 성장하여 새로운 가족까지 꾸리게 되어 무옥과 정화의 제삿날 모두 함께 모여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식구(食口)와 가족(家族)의 의미
영화 대가족의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가족의 의미, 조건이란 무엇인지 묻고 있다. 주인공 무옥은 전쟁고아로 보육원에서 자라 혈혈단신으로 성공한 인물이지만 어찌보면 그래서 더 혈연, 혈통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유교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한국인들 대다수의 공통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면부지의 사람인데도 성이 같으면 본관을 묻고 어느 파의 몇대손인가 묻고 확인하며 금새라도 형제나 집안 어르신, 조카가 되는 모습은 한국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생면부지의 사이인데도 갱주 최씨 충렬공파라는 어찌보면 상징성에 불과한 혈연으로 부장검사씩이나 되는 인물이 건달 옆에서 연명하는 피의자에게 깍듯이 인사하는 모습. 한국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 않았나?
이런 혈연관계의 애착과 여기에서 비롯된 판단과 행동을 두고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으로 쉽게 재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 비록 혈연관계가 아니라 할지라도 함께 건강하고 화목하게 살며 함께 같은 밥을 먹고 사는 식구라면 그 역시 가족이 될 조건을 갖춘 것이며 가족이 될 수 없다고 쉽게 부정할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민국과 민선의 삼촌이라는 인간쓰레기가 그 좋은 예다. 형의 자녀들이기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이였어도 후견인 자격이 있고 게다가 민국과 민선이 살던 보금자리까지 자신의 소유로 돌렸다면 아이들을 키워야 할 의무와 양심이 있어야 하지만 혈연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저 남남이라며 철저히 부정하였다.
21세기를 벌써 사반세기를 넘게 살아온 한국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는 더더욱 깊게 생각해야 할 화두임에 분명하다. 1980년대 이후 자식을 둘 혹은 하나씩만 낳아서 키우는 사회풍조가 정착되었고 21세기 이후엔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을 원하는 젊은층도 많을 뿐더러 결혼을 해도 아이를 갖지 말자고 합의 본 딩크(DINK)족도 많아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같은 시대에 꼭 혈연으로 맺어져야만 가족이 성립되는지, 더구나 호주제도 진작 폐지된 마당에 아직도 꼭 아들만이 성씨를 이어받아 대를 이어야 하는지의 문제 역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대가족은 가벼운 가족 코믹영화를 표방하고 있으나 그 주제의식은 결코 가볍기만 하지 않고 오히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좋은 영화였다. 무옥역의 김윤석은 극단적인 설정의 인물-타짜의 아귀, 황해의 면정학, 1987의 박처원-의 연기를 할 때 광기를 뿜어내는 명연기를 보였고 흥행성적도 좋았는데 이토록 훈훈한 가족영화에서도 정말 연기를 잘하는 것을 새삼 느꼈다. 역시 대배우의 클래스에 있는 배우들은 어떤 설정과 언어, 분장을 하고 연기를 해도 거리낌이 없는 것 같다.
문석 역의 이승기가 꽤 오래 연기를 해왔지만 정작 내게 그가 출연한 영화, 혹은 드라마는 처음이었는데 상당히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정화 역의 김성령은 조금 어울리지 않는 배역이 아니었을까 아쉬움이 들었다. 만둣국 식당에서 일하는 억척스런 아줌마치곤 너무 세련되고 예쁜 외모와 말투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런 역할에 제격으로 떠올릴만한 배우로 라미란과 김선영이 있는데 아마 감독의 설정이 그냥 아줌마의 모습이 아닌 예쁜 아줌마를 원하는 것이었다면 수긍이 간다. 하지만 그랬다면 차화연이 정화를 연기했다면 김성령보다 좀 더 자연스럽게 배역에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