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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수 있어 난 행복"…흘린 땀만큼 버는 예순일곱 '지게꾼'
2008년 08월 03일 (일) 14:06   아시아투데이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도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는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좋은 기사이다.
흘린 땀만큼 정직하게 벌어서 좋다는 이 분의 말엔 인생에 대한 겸허한 자세를 배울 수 있고 직업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배울 수 있다. 일년동안 일을 빠진 날은 불과 하루뿐이고 자신을 믿고 맡기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투철한 직업의식이 무엇인지 새삼 일깨워준다.

올해 67인데 20년전부터 일을 시작했다면 50을 가까운 나이에 이토록 힘든 일을 시작했다는 것. 그 나이면 하던 일도 그만두고 쉬려고 할 판국에 100% 쌩노가다를 그 나이부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정치, 경제, 외교 등등 그 무엇 하나 한국사회에 암울한 뉴스투성인 작금의 현실. 삼겹살 값을 잘 모른다고 동문서답하는 경제수장에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는 버스비가 70원이냐고 반문하는 이런 개판같은 나라에서 그나마 건강하게 잘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박노찬 어른같은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여기 오가는 사람들, 겉으로는 다들 웃고 있지만, 속으론 우는 사람도 많아…이 나이에도 일할 수 있는 나는 행복한 거라고"

올해 예순 일곱인 박노찬씨는 남대문시장의 지게꾼이다. 20년 넘게 이 일을 해오는 동안 삶의 수단이었던 '지게'는 이제 '손수레'로 바뀌었지만, 그는 여전히 지게꾼으로불리며 시장 골목 사이로 물건을 나르면서 오늘을 살아간다.

"지금은 40~50명 정도 돼 나.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 안 남았어. 힘이 있어야 하는 일이니까 나이가 들면서 하나둘 떠났지. 새로 시작한 젊은 애들도 금방 떠나더라고…"

택배며 퀵서비스 같은 새로운 운송수단이 등장하면서 '역전 지게꾼’도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없다. 산업발전으로 직장선택의 폭이 넓어진데다 운송수단이 기계화돼 우리 기억 속에서 차츰 희미해져 가고 있다.

하지만 서울역 근처의 남대문시장 한켠에는 아직도 손수레를 앞세우고 치열한 삶의 현장을 누비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시장 구조상 작은 손수레가 배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눈 뜰 때마다 고마워"

박노찬씨는 "친구 소개로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됐다"면서 "오늘날까지 지게 일로 2남 1녀를 모두 대학 공부시키고 나도 이 나이까지 일하고 있다"고 뿌듯해 했다. 열심히 자신의 힘으로 아이들 뒷바라지 하고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생활이니 만족스럽다는 것이다.

"이 나이면 일이 없어서 집안에 있는 사람들이 많잖아. 나는 정말 행복한 거야. 아침에 눈 뜰 때마다 얼마나 고마운데.."

그의 하루 일과는 여느 직장인과 다름없다. 다만 일하는 시간이 무척 빠를 뿐이다. 미아삼거리 집에서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부인의 단잠을 깨울까봐 조심스레 아침을 먹고 시장으로 향한다. 도착하는 시간은 오전 4시45분쯤. 거리에서 맨손체조로 몸을 풀고 아침일과를 준비한다. 일이 끝나는 시간은 오후 5시. 예약손님이 있으면 조금 늦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이 시간이면 바로 집으로 향한다. 토요일은 오후 2시까지, 일요일은 휴무다.

그는 종종 자식과 손자들에게 자신이 일하는 곳을 둘러보게 한다. 꼭 무엇을 가르쳐주고 싶어서가 아니다. 땀 흘리면서 일하는 아버지,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에 부딪칠 때 힘이 되는 기억일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알아서 잘 들 커주었으니 고마운 거지. 나는 그저 건강이 허락하는 한 흘린 땀만큼 버는 것뿐이고…"

그는 그렇게 번 돈을 부인에게 생활비로 주고 또 손자들 용돈을 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한다. 단지 돈만 버는 것이 아니다. 남대문시장 생활 20년이 넘은 그는 "정말 남는 것은 사람"이라고 했다. 몇 년 전 자주 거래했던 액세서리 사장의 도움으로 첫째 아들의 가게를 낼 수 있게 된 것이 지금도 기쁘다는 그다.

"아들놈이 졸업하고 취직을 했는데 회사가 안 좋았어. 그래서 회사 그만 두고 나와서 장사나 배우라고 했지. 하지만 장사는 아무나 하나. 잘 아는 이곳 액세서리 집 사장 도움으로 그 밑에서 한 3년 일을 배우게 했지. 지금은 미아리에 가게를 하나 낸 어엿한 사장님이야."

◇"나를 믿고 물건을 맡기는 거야"
박노찬씨가 남대문시장에서 서로 허물없이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지난 20여년 동안 한 결 같이 쌓아온 신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시장에서 신용을 얻기 위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출근을 했다. 일이 없어 하루를 꼬박 일감을 기다리기만 했던 날도 있었지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신용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 탓이다. 지난 1년만 해도 일을 빠진 날은 하루에 불과하다.

"갑자기 배달할 물건이 있어서 연락을 했는데 마침 내가 자리에 없어봐. 그래선 단골들이 나를 믿을 수가 없지. 또 단골들의 성향과 일하는 방식, 그리고 맡기는 짐을 면밀히 알고 있어야 돼. 나를 믿고 물건을 맡기는 것이니까"

현재 남대문시장에서 물건을 나르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이제 50여 명에 안팎에 불과하다. 이들의 고객들은 대부분 이곳 시장 상인들과 쇼핑객들이다. 트럭이나 승용차에 실어주거나 가게로 배달하는 짐이어서 신원상태를 시장관리주체에 등록해야 한다. 한 짐(하나의 손수레로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분량을 의미한다)에 5천원을 받는 이들의 월수입은 150만 원에서 170만 원선이다.

박노찬씨는 "몇 년 전에만 해도 이 수입의 얼추 두 배는 됐다"면서 "시중 경기가 안 좋고 중국 등으로 의류공장을 많이 옮기는 바람에 일거리가 많이 줄었다"고 말한다.

"한 때는 운반해야 것이 많아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빵으로 대충 때우면서 일할 때도 있었는데, 2002년 월드컵이 시작된 5월말부터 일이 뚝 끊어지더라고. 잘 나갈 때는 호주머니에 돈 10만원은 넣고 다녔지. 지금은 (그때의) 절반도 안 돼는 날이 많아."

하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는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짤릴 걱정' 없고, '쓸모없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이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는 그다.

많은 짐을 지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끌고 가게를 찾아다니는 일은 보기에도 힘이 들어 보인다. 더군다나 맨손으로 서 있어도 땀에 옷이 젖어 버리는 한여름의 뙤약볕 속에서 힘을 써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차라리 땀을 흘려도 여름이 나아. 겨울에는 추워서 기다리는 게 더 힘들어. 겨울이든 여름이든 일하면서 땀을 흘려야 사는 맛이 난다"고 말했다.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거짓말 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그는 자신의 힘으로 사는 게 떳떳해서 단 한 번이라도 힘들다거나 그만 두고 싶었다는 생각을 한적이 없었다고 한다. '지게꾼' 박노찬씨는 흘린 땀만큼 돈 버는 당당한 이 시대의 '아버지'다.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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