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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가을부터 2010년말까지 1년 3개월간 나에겐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청춘불패. 청춘불패는 20대 초반의 여자 아이돌 스타들이 몸빼입고 막노동하는 것 그 이상의 많은 의미를 남겨주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생활의 지혜도 배울 수 있었고 친환경과 농업의 중요성도 일깨워주었다. 25, 26회를 전후로 해서 점점 분위기가 산만해지기 시작하더니 보는 재미가 많이 떨어졌고 핵심멤버였던 순규, 유리, 현아가 빠지면서 새로운 멤버로 교체하였으나 처음의 인기를 회복할 순 없었다. 결국 타방송과의 시청률 경쟁에서 연이어 밀리더니 2010년말에 폐지되는 불운을 맞게 되었다. 농사라는 것이 한 두해의 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닐텐데 폐지되는 것이 너무 아쉬웠고 시즌2를 한다고 약속했으나 역시 이행되지 않았다. 아이돌촌에 머무르며 땀과 노력으로 일군 논과 밭, 그리고 가축들까지. 그렇게 버려두기엔 너무 아깝기만 하다.

언제든 강원도에 갈 일이 있으면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청춘불패 촬영장을 드디어 찾아갔다. 한때는 수 백 명의 관광객이 몰렸다는 이 명소는 옛 명성이 너무 무색하리만큼 을씨년스러움 그 자체였다.


강원도 홍천 IC에서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한다. 이 터널을 지나 또 한참을...홍천군 남면 유치리는 생각보다 깊은 산골에 있고 주변경관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그렇다고 해서 홍천에서 1시간 이상 걸리는 아주 먼 곳은 아니다. 홍천에 들어서면 거기서 거기일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멀었다. 약 10km 정도?


첩첩산중을 지나 한참을 달려야 한다. 2011년 7월 14일의 이곳 날씨는 잔뜩 흐렸고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졌다. 높은 산봉우리에 걸친 흰구름은 장관이었다.


꼭 가보고 싶었던 이 곳. 큰 길에서 좁은 시골길로 들어가야 한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은 찻길의 끝에 아이돌촌이 있다.


구준엽 화백이 방문하여 그려주고 간 청춘불패 벽화. 날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반경 500 미터 내에서 지나가는 사람 하나 보지 못했다. 을씨년스러움 자체였다. 그 많았던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프로그램 종영 후 반 년이 지나자 뚝 끊겼나보다. 슬펐다. 청춘불패를 잊지 못해 일부러 먼 걸음을 했던 사람으로선.


하얀 강아지 유치의 아들인 누렁이 찬란이. 유치와 찬란이는 따로 떨어져 산다. 낯선 사람을 매우 반긴다.


가장 보고 싶었던 푸름이. 순규의 애정과 눈물이 함께 했던 푸름이. 5개월 송아지때부터 청춘불패에 출연하여 순규를 비롯한 모든 멤버들, 그리고 관광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그 푸름이는 이제 거대하고 늠름한 황소가 되었다. 지난 겨울 구제역이라는 악마의 재앙 속에서 푸름이를 살처분 했다는 낭설도 있었으나 사실무근으로 확인되었다는 기사도 있었고 푸름이는 구제역의 재앙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았다.


푸름이의 새끼. 2011년 5월에 출산한 숫송아지. 엄마와 둘이서 쓸쓸하게 외양간을 지키고 있었다.


푸름이를 일하는 소로 키우겠다고 코뚜레를 했었다. 순규는 피를 흘리며 코뚜레 성인식을 하는 푸름이를 차마 보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청춘불패’ 소녀시대 써니가 눈물 흘린 이유는?

그러나 프로그램이 종영되고 이젠 일하는 소로 키울 계획도 없게 됐으니 코뚜레를 풀어준 것 같다. 기껏 코뚜레까지 하고 일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하게 되다니...이 역시 슬프다. 아쉽다.


청춘불패의 마지막 에이스였던 하라구의 소유였던 닭들. 청춘이와 불패 부부, 그리고 새로 들인 많은 암탉들. 이젠 딸랑 요것만 남았다.


처음 강아지로 아이돌촌에 들어올 때부터 현아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유치. 현아와 순규가 추운 겨울날 따뜻한 방안에서 온몸을 씻겨 주는 초특급 호강을 누렸던 그 유치. 이젠 어엿한 성인이 되어 찬란이라는 강아지 새끼도 낳았고 이렇게 아들과 따로 떨어져 외롭게 산다. 이 아이는 찬란이와는 달리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강해서 큰 소리로 짖는다.


마당이 좁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그들이 밥해먹던 부엌의 전경. 부엌도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멤버들이 땀흘려 가꾸었던 밭과 작물들. 이제 그들은 떠났지만 유치리 주민들은 이 곳을 계속 지켜가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청춘정의 모습. 이렇게 잘 지어놓은 청춘정엔 사람들이 북적거려야 당연한 것 아닌가?


그들은 떠났지만 을씨년스러운 남면 유치리의 이 촬영장은 그래도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농장에서 유기농 재배도 잘 되는 것 같았다.

청춘불패를 보기 전까진 난 나르샤, 효민, 현아, 선화를 몰랐다. 당연히 알아야 할 소녀시대의 순규, 유리, 그리고 카라의 구하라만 알고 있었다. 순규와 유리, 현아와 교체된 빅송, 주연, 소리도 청춘불패를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

여자 아이돌 스타에 대한 호감도 없었다. 오히려 약간은 비호감에 가까웠다. 그러나 청춘불패를 열심히 시청한 후부터 여자 아이돌에 대한 시각도,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이런 예능이라면 시청률과 무관하게 언제까지나 장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지만 시청자가 원하는 이상은 방송국의 현실과 엄연한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가보니 그저 깡촌 중의 깡촌에 작은 집 하나에 불과한 이 곳에서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G7이라 불렸던 그들은 그곳에서 땀흘리며 일했고 일하면서 즐거워했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며 이웃사랑과 정을 배웠고 헤어질 땐 통곡하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땀의 댓가, 즐거움을 알아가며 조금씩은 더 성장했고 아이돌 스타에 전혀 관심없는 나같은 사람까지 급호감으로 만들어주었다.

언제까지나 지나가버린 시간만을 그리워하며 살 순 없다. 하지만 아이돌촌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때론 환하게 웃고 때론 눈물을 흘렸던 그들만큼, 혹은 그들보다 더 큰 그리움,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는 지금도, 그것도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은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2011년 7월. 이 적막한 청춘불패 현장을 떠나며 든 생각이다.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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