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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극한직업’을 보면서 아주 오랜만에 정신 없이 웃어 젖혔다. 내 기억 속에서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어 본 적은 있어도 한국에서 제작된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까지 쉬지 않고 웃어 본 적은 아마도 2009년에 보았던 ‘차우’이후엔 처음이었던 것 같다. 

 

차우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다 알만한 바로 그 장면~! 살아 남기 위해 엄마~! 를 간절히 외쳐야 했던 윤제문의 연기이다. 난 이 장면을 보며 입에 침까지 흘리며 웃었다. 

 

내가 한국영화를 보면서 정신 없이 웃었던 영화들을 대략 간추려 보면 전설 중의 전설이 된 영화 ‘넘버3’, ‘신장개업’, ‘공공의 적’, 그리고 ‘차우’ 정도였다. 이들 영화에서 웃음을 주는 요인, 즉 유머의 코드를 분류해 보면 ‘신장개업’, ‘공공의 적’ 그리고 ‘차우’는 마치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극의 설정이나 배우의 연기에서 큰 웃음을 찾을 수 있다. 반면 ‘넘버3’는 이 영화를 전설로 남기고 사라진 전설이 되어 버린 송능한 감독의 이른바 '쌈마이스러운' 주옥 같은 명대사를 들으며 터져 나오는 폭소를 참을 수 없었다. 국민 유행어였던 송강호의 헝그리 정신과 무대뽀 정신은 물론이거니와 최민식, 한석규, 그리고 조연으로 명연기를 펼쳤던 안석환, 박상면의 대사 역시 어디 하나 주옥 같지 않은 대사들이 없었다. 이를테면 한석규와 같은 조직 내의 라이벌인 박상면이 싸움을 할 뻔한 일촉즉발의 순간에 한석규가 칼을 뽑아 들며 내뱉은 대사인 ‘너 심장에 기스 나고 싶냐? 성경구절에도 써있어. 재떨이로 흥한 새끼 재떨이로 망한다고’ 랄지 한석규의 보스였던 안석환이 호텔 사장들을 협박할 때 이야기 한 ‘얼씬거리다간 병풍 뒤에서 향냄새 맡을 줄 알아!’ 등의 대사는 몇 번을 곱씹어 봐도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21세기 이후 한국영화계가 질적, 양적으로 본격적으로 팽창된 시점 이후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천재 감독들 중에서도 이 송능한 감독 이후 그토록 대사를 맛깔 나게 써 내리는 감독을 본 적이 없는 점은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영화 ‘극한직업’의 유머 코드 역시 ‘넘버3’와 마찬가지로 극의 설정이나 배우의 연기보다는 배우들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에서 찾을 수 있다. ‘넘버3’와 ‘극한직업’의 공통점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우와~! 아니 어떻게 저런 대사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차이점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넘버3’에서는 ‘말을 참 재밌게 잘 만든다~!’하며 감탄하는 반면 ‘극한직업’에서는 ‘저게 미쳤나?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지? 저 상황에서?’라고 표현할 수 있다. 

 

‘넘버3’에서는 단 한 마디의 대사도 쌈마이의 맛을 살린, 쌈마이 언어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리며 폭소를 이끌어냈고 ‘극한직업’에서는 ‘의외의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의외의 말’들이 큰 웃음을 자아낸다. 여기에서 ‘의외의 상황’은 ‘절대 웃어선 안될 상황’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의외의 대사’는 ‘적어도 그 상황에서만큼은 말도 안되게 웃기는 말’ 혹은 ‘적어도 그 상황에서만큼은 해서는 안될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이처럼 ‘절대 웃어선 안될 상황’에서 ‘말도 안되게 웃기는 대사’를 말하는 사람들을 간혹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을 정신머리가 없는 사람, 혹은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냉정하게 표현할 수 있겠지만 또 어떻게 보면 그들을 ‘매우 순수하고 해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바꿔 생각할 수 있다. 절대로, 절대로 웃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그래서 조금 혼나고 끝날 일을 더 크게 혼나고 마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나에게는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형 같은 형이 정확하게 이 표현에 부합하는 사람인지라 잘 이해할 수 있다. 그 형은 인격적으로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최고의 배려와 예의를 갖춘 사람인데 웃음을 참지 못하고 눈치가 느린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조금 다른 예로 지난 2010년에 방영하여 화제를 모았던 김소연 주연의 ‘검사 프린세스’의 주인공 마혜리가 딱 이런 인물이었다. 아이큐 160이 넘는 천재이자 재벌 2세녀인 마혜리는 아버지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사법시험을 치러 합격하여 검사에 임용된다. 그리고 초임 주제에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후 6시에 칼 퇴근을 한 후 쇼핑, 요가, 피부미용 등을 거리낌없이 받으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된장녀 검사이다. 심지어 초임검사들이 하는 점심밥 총무를 맡고 난 후 같은 부서의 선배 검사들을 호화 부페 식당으로 모시고 간다. 월급쟁이가 어떻게 이런 곳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냐고 굳은 표정으로 묻는 선배 검사에게 아주 해맑은 표정으로 대답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매일 오나요? 일주일에 한 두 번? 이 삼십 만원만 더 걷으면 돼요~! 

이 삼십 만원만. 이 말은 결코 악의가 있어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저 순수한 영혼이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일 뿐이다. 

 

영화 ‘극한직업’에서는 주인공인 마약반 형사들을 이처럼 ‘매우 순수하고 해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로 설정하고 큰 웃음을 주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마약반 형사들의 순수하고 해맑은 영혼의 소유자이기에 나올 수 있는 행동과 대사들이 결코 밉상으로 보이지 않고 큰 웃음을 줄 뿐이다. 이들은 반장부터 신입 막내까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죄다 해맑디 맑은 영혼의 소유자들인데 특히 마약반 5인조가 합체된 장면에서 맑은 영혼의 표출이 극대화된다. 그들이 보였던 최고로 웃겼던 순간을 마약반 5인조가 합체하였을 때와 개인 연기장면으로 나누어 보았다. 

 

I. 5인조가 합체하여 연기할 때

 

1. 경찰서장과 처음으로 대면하는 장면

 

마약 조직의 겨우 중간책 조직원 하나를 잡겠다고 차량 16대를 파손시킨 참사를 저지른 마약반 형사들을 질책하기 위해 서장이 부른 장면이다. 이들은 서장에게 질책을 당하는 시간에서조차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16대의 충돌사고 중 마지막에 받은 차는 앞 범퍼가 찌그러진 김에 보험금을 노리고 와서 받았다는 말을 주고 받는 것은 어지간히 해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 와중에 SNS 스타를 배출하였다며 차를 강탈당할 뻔한 아줌마가 강탈범의 머리 끄댕이를 붙잡고 끌어 내려 다시 차를 빼앗는 장면의 동영상을 보여주자 활짝 미소를 지으며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이때 서장님의 입에서 나온 대사가 ‘놔둬. 재밌네’와 ‘니들은 좋겠다. 해맑아서’ 였다. 바로 이 장면에서 이 마약반 형사들이 얼마나 해맑은 영혼의 소유자들인지, 앞으로 또 어떤 사건들이 벌어지며 웃음을 주게 될지 이야기 해준다. 

 

2. 치킨집을 인수, 경영하는 과정 

 


처음으로 치킨집에 잠복근무를 할 때의 장면도 정말 크게 웃었다. 이무배가 떴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치킨집 주인 아저씨가 뭐 하는 거냐고 묻자 눈치 게임을 하는 장면이다. 반장 상기가 먼저 ‘일~!’ 하고 외치며 일어서자 차례로 눈치를 보며 일어난다. 자신들의 잠복근무가 들통이 날 수도 있는 긴급한 상황에서 이처럼 눈치 게임을 생각하는 반장 상기의 행동도 큰 웃음을 자아냈지만 그걸 따라 하는 다른 형사들도 말 그대로 다들 똑 같은 인간들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수원 왕갈비 통닭이 너무 잘되어 다들 통닭 장사에 정신이 없어 이무배를 놓친 후의 장면 역시 아주 크게 웃었다. 영호 혼자 외롭게 이무배를 추적하다 놓친 다음 허탈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통닭집에 들어와 따지자 바쁘니까 무전을 못 받았다며 각자의 이유를 들어 항변한다. 주방에서 일하는 봉팔은 180도 기름에 데이고 칼에 베이고 너무 아팠다며 고통과 피곤함을 호소했다. 재료준비를 하는 막내 재훈은 하루에 양파 네 자루, 마늘 다섯 접, 파 서른 세단씩 까보셨나며 항변하며 서빙을 하는 연수는 하루 234만원의 매출을 올리느라 하루에 몇 개의 테이블을 세팅하고 치웠겠느냐며 묻는다. 유일하게 제정신으로 사는 영호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닭 장사를 열심히 하느냐고 절규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이 장면이 영화에서 웃음을 주기 위한 다분히 작위적인 설정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일상생활에서는 둔감하기 짝이 없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집중력만큼은 엄청난, 일상생활에서는 둔재이지만 공부나 연구만큼은 천재인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본 적이 있어서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이를테면 천재 기사 이창호 국수가 가장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들은 매우 해맑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이며 이처럼 해맑은 그들이 닭장사에 몰입하여 돈맛까지 알았으니 이무배따위는 아예 아웃 오브 안중이 되어 버린 것이다. 

 

3. 이무배를 놓친 다음 통닭집에 모인 장면

 


오로지 이무배를 잡기 위해 불철주야로 닭장사를 하며 때를 기다리던 마약반 형사들. 드디어 이무배를 잡는가 했더니 하필 통닭집을 비웠던 바로 그날에 이무배와 조직원들은 이사를 가 버린다. 모두 통닭집에 모여 허탈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며 적막감만 감돌던 바로 그 순간. 막내 재훈이 먼저 한마디를 꺼낸다. 


‘혹시 서장님하고 이무배하고 한 패 아닙니까?’

 

영호는 어이없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미친 새끼’를 중얼거린다. 연수 역시 하도 어이가 없어서 바구니에 담긴 양파를 내리치자 그 모습을 본 봉팔이 한 마디 거든다. 

 

‘그만해~! 상처나면 양념 맛 없어져~!’

 

봉팔의 어이없는 소리에 연수는 양파를 집어 던지고 또 그걸 받은 봉팔은 ‘스트라이크~!’를 외친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반장 상기는 그저 실성한 듯 웃기만 하다가 배달 예정이었던 맥주를 까서 마시고 맥주 안에 수면제가 들었음을 몰랐던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만다. 오로지 이무배를 잡기 위해 시작한 이 잠복근무가 실패했고 결국 마약반이 해체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들은 이처럼 해맑은 순수함을 잃지 않는다. 반장 상기 역시 그들과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고 그저 웃다가 수면제 탄 맥주를 마시고 쓰러질 뿐이다.  

 

II. 마약반 형사 개인 연기의 폭소장면

 

1. 반장 고상기

 

 

다른 부하 형사들이 엉뚱한 소리와 짓거리를 하고 다녀도 중심을 잡아줘야 할 상기가 알고보면 가장 해맑은 영혼의 소유자임이 여러 장면에서 등장한다. 그 첫 번째 장면으로 강력반장이었다가 먼저 과장으로 승진한 최형사와 그의 부하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다음 소고기 회식이니까 따라 오라는 말에 가장 먼저 따라갔던 장면을 들 수 있다. 또 한 번 큰 웃음을 자아냈던 장면이 있다. 업무시간에 몰래 장사나 하고 그것도 모자라 음식 가지고 사기를 쳐서 정직을 당한 후 아내가 ‘반장 하지 말랬더니 이제 주방장이냐’고 묻자 ‘주방장은 마형사야~’라며 숨죽이는 소리로 대꾸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니가 도대체 제 정신이냐? 거기에서 그 말이 나오냐?’ 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는 대단히 해맑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2. 장연수

 


나는 이하늬가 배우로서 연기하는 영화를 딱 한 편만 본 적이 있다. 주지훈과 함께 출연한 코믹 사극 ‘나는 왕이로소이다’였다. 그 영화를 보며 코믹영화와 사극에서도 그런대로 어울리는 것 같다라는 느낌까지 받았는데 ‘극한직업’을 보면서 이 배우가 이렇게까지 코믹 연기에 잘 어울리는 배우였나? 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장연수가 등장하는 장면 중 극장에서 나 혼자 너무 크게 웃어서 민망했던 장면이 있다. 반장 상기가 퇴직금을 앞당겨 찾아와 통닭집을 인수한 다음의 장면이 나온다. 그래도 퇴직금까지 끌어 쓰고 괜찮으시겠냐고 상기에게 묻자 상기는 어차피 이무배 못잡으면 다 때려치우고 치킨집 차려야 되니 몇 개월 먼저 썼다고 치자며 쿨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때 장연수는 ‘멋있다~! 우리 전남편~!’하며 감탄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극장 안의 다른 관객들은 웃지 않았지만 나 혼자 얼마나 크게 웃었는지 쪽팔렸던 기억도 있다. 
그 대사가 원래 대본에 쓰였던 것인지 아니면 이하늬의 애드립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만일 이하늬의 애드립이었다면 코믹 연기에 대단한 감각을 가졌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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