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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는 남자의 악기이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주위에 피아노를 배우는 어린이들을 살펴보면 여자아이들이 대부분이지만 훗날 전문 피아니스트, 대가로 성장하는 이들은 대부분이 남자이다. 피아노를 잘 다루려면 우선 손이 커야 하고 힘이 무지 세야 한다.

왼손으로 반주하면서 오른손으로 그냥 드르륵 드르륵 긁어대는 피아노는 남녀 공히 큰 어려움 없이 잘 해낼 수 있겠지만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같은 러시아 작곡가의 피아니즘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큰 손으로 쾅쾅 거리며 찍어내리는 압도적인 힘이 필요하다. 이런 힘을 여자들이 구사하기엔 아무래도 선천적으로 딸릴 수밖에 없다.

피아노로 테러를 자행하는 테러리스트들이 있다. 이 테러리스트들이 한 대의 피아노로 표현하는 극한의 힘과 기교는 공포심마저 들게 한다. 듣는내내 손에서 땀을 쥐게 하고 다 듣고나면 콧잔등에 땀까지 배어있다.

한 대의 피아노로 표현하는 피아노의 테러. 난곡 중의 난곡들을 연주한다고 해서 다 테러는 아닐 것이다. 대표적으로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라는 작품이 그렇다. 피아노 독주곡 중 가장 어려운 극한의 기교를 요구한다는데(특히 스카르보) 타건의 묘미를 살린 강렬한 느낌의 곡은 아니다.

공포심이 들 정도의 무시무시한 피아노라면 쾅쾅 내리찍는 압도적인 힘과 함께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살벌한 테크닉, 그리고 단 하나의 미스터치도 허용하지 않는 정확성을 겸비해야 한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여 결론을 내렸을 때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테러리스트는 리히터, 길렐스, 폴리니의 세 사람이다. 지금 딱 떠오르는 것만 꼽는다면 리히터가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의 3악장, 그리고 길렐스가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의 3악장, 그리고 폴리니가 연주하는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7번의 3악장, 이렇게 세 가지를 들겠다.

1.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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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iatoslav Richter
녹음: 1960/11/29,30 Stereo, Analog
장소: New York

리히터가 서방세계에 첫발을 내딘 1960년을 전후로 한 연주는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이 모두 뛰어나다. 특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에 있어선 더더욱 그렇다. 20세기를 살았던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그의 음악세계에 절정을 맞이했던 시기였으니 더 할 말이 있겠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의 3악장은 리히터의 연주를 빼놓곤 심심해서 못 듣는다. 길렐스도 있고 박하우스도 있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의 난다긴다하는 명인들은 숱하게 많지만 그래도 23번의 3악장만큼은 리히터가 단연 부동의 톱이다. 이거야말로 진짜 피아노로 저지르는 테러의 정수, 에센스라고 말할 수 있다. 다 듣고나면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다. 그리고 터져나오는 청중들의 박수소리. 나도 모르게 그저 그들을 따라서 박수를 치게 된다.

프라하 공연실황의 음반과 멜로디야 음반, 그리고 필립스의 음반과 비교했을 때 연주 자체는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음질의 문제가 좀 있긴 한데 난 그래도 1960년 뉴욕 실황을 좀 더 자주 듣는 편이다.

2. 에밀 길렐스-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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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l Gilels (piano)
녹음: 1968/12/23 Stereo, Analog
장소: Grand Hall of the Moscow Conservatoire

소련이 낳은 최고의 베토벤 스페셜리스트 에밀 길렐스. 강철타건의 대명사 에밀 길렐스. 광폭한 힘으로 듣는 이를 넉다운 시켜버리는 진정한 피아노의 테러리스트.

그가 녹음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의 가장 유명한 음반은 1980년에 미완성으로 끝난 DG 노랑딱지 음반이다. 그러나 소련 멜로디야에서 나온 에밀 길렐스 에디션에 수록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는 한창 젊은 시절에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광폭함이 그대로 살아있다. 적어도 낭만성, 서정성 뭐 이딴 거 다 빼고 오로지 무시무시한 힘으로 돌진하는 직선적인 연주를 원한다면 이때의 길렐스가 훨 낫다.

3. 마우리치오 폴리니-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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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urizio Pollini
녹음: 1971/09 Stereo, Analog
장소: Herkulessaal, Residenz, Munich

10년의 공백을 깨고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폴리니의 화제작. 폴리니는 죽지 않았음을 만천하에 증명한 바로 그 음반. 온 세상을 경악케한 바로 그 음반. 폴리니하면 떠오르는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7번과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르슈카 등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난곡 중의 난곡들을 단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구사하는 폴리니의 기교에 그저 감탄과 감탄을 금치 못한다. 특히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7번은 전쟁 소나타라는 별명답게 진짜 전쟁같은 살벌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이 곡의 3악장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폴리니의 솜씨는 그저...경이롭다는 표현말고는 다른 표현이 딱히 떠오르지 않을 뿐이다.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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