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324)
김소연 (59)
Classic Music Story (19)
Artist Story (46)
세상을 보는 눈 (122)
MLB Story (26)
KBO Story (13)
Fun Video (9)
Drama 보기 (9)
좋은 정보 (6)
In my mind (3)
그 시절의 pop story (9)

최근에 올라온 글

Total
Today
Yesterday
04-28 02:13
감사해요 사랑해요 잘했어요 함께해요

달력

« » 2024.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카라얀이 남긴 음악

카라얀의 인생을 쭉 살펴보면 그보다 더 성공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화려한 삶을 살았으나 화려한 빛에 드리워진 그림자 또한 대단히 어둡고 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에서 카라얀이 남긴 많고도 많은 음반에 수록된 그의 음악까지도 폄하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던 간에 음악가는 철저히 그의 음악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법. 이젠 그가 남긴 음악들을 살펴본다.

우선 그의 음악을 이야기하기 전에 영화감독 김기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컬트영화, 매니아 영화를 만드는 김기덕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사상초유의 빅히트를 기록하자 이런 멘트를 남겼다.

'한국 영화의 수준과 한국 관객의 수준이 최고점에서 만났다. 이는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다'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다는 듣기에 따라선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이 알쏭달쏭한 말을 남긴 김기덕 감독은 그날부터 네티즌들의 어마어마한 악플의 바다 속에 빠지게 된다. 괴물을 본 사람들의 수준을 은연중에 비하하는 오만함에 대한 질책이었다. 그러는 넌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영화를 만들기에 그따위 소리를 하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말을 나쁜 식으로만 받아들일 필요도 없는 것이 김기덕 감독의 말을 나쁘게 받아들여 그에게 악플을 남긴 사람들은 그 스스로가 자신의 수준을 낮게 보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영화와 그 영화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꼭 낮은 수준이란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김기덕 감독과 그에게 악플을 남긴 네티즌의 관계는 그대로 카라얀의 음악과 그의 음악에 대한 평가에 대입할 수 있다. 카라얀이 남긴 음악은 호불호가 대단히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으로 유명한데 불호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첫 번째 이유로 들면서 강변하는 사항은 바로 카라얀이 지나치게 대중적인 기호에 영합한 음악들만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대중적인 기호가 숭고한 예술적 가치, 수준에서 음의 방향으로 이동하여 수준이 낮은 것만을 이야기하는 꼴이 된다. 만일 대중적 기호가 예술적 가치, 수준과 동일한 선상에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라면 카라얀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근본부터 잘못된 것이다.

즉, 대중적이란 것과 예술적이란 것은 극과 극에서 존재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며 그 지위의 높고 낮음을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만일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 대중적인 음악은 도무지 내 취향에 맞지 않으니 좀 더 있어 보이는 어렵고 예술적인 음악을 꼭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분이 있다면 호기심이라도 좋으니 바르톡, 쇤베르크, 쇼스타코비치 등의 실내악을 한 번 접해보기 바란다. 세상의 모든 음악이 꼭 아름다운 것은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것이며 대중적인 것이 백 번, 천 번 좋다는 것을 또한 절실히 느낄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았을 때 카라얀이 대중적 기호에 맞게 음악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가 곡을 해석하는 능력이 얼마나 탁월했고 그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좋은 반증에 지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카라얀은 관현악의 색깔을 화려한 금빛으로 채색하는 재주가 누구보다 훌륭한 지휘자였다. 대단히 잘 정제된 백설탕과 같다고 할까? 현악 5부를 중심으로 목관, 금관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일사불란한 탄탄한 앙상블을 만들었고 그 속에서 아주 깨끗하고 잘 뽑아낸 시원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탁월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중용을 지키며 곱고 화려하기만 한 것보다 때론 정제되지 않은 깔깔한 흑설탕을 원하는(나도 이 경우에 속한다) 이들에겐 카라얀의 음악은 몇 번 듣고 나면 바로 질리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이렇게 표현하면 좋을 것 같다. 처음 접할 땐 아주 훌륭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더 이상 볼 내용이 없어지는 교과서.

카라얀은 오스트리아 출신이면서도 독일-오스트리아 음악과는 아주 코드가 다른 라틴계 작곡가의 음악과 러시아 음악의 해석에 있어서도 발군이었다. 동시대를 살았던 지휘자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선배 지휘자들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레퍼토리를 섭렵하며 레코딩하였고 그가 만든 레코딩은 어느 곡도 최상의 그레이드를 자랑한다. 이는 카라얀이 독일어권 출신의 지휘자이지만 음악을 해석하는 스타일을 어느 한 쪽에 매몰되지 않도록 때때로 변신을 추구하였고 그 변신에 훌륭하게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아마 그 어떤 지휘자가 다시 나와도 카라얀만큼의 균형감각을 가지고 변신에 능한 지휘자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카라얀이 클래식 음악계에 끼친 공로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알려지지 않은 현대작곡가, 고전주의 작곡가의 곡을 발굴하여 레코딩을 통해 세상에 내놓아 빛을 보게 했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예가 있지만 지금 생각나는 것만 들어본다면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란 곡과 파헬벨의 캐논 D장조란 곡이 바로 그렇다. 언제 어디서나 BGM으로 많이 쓰이고 쉽게 들을 수 있는 곡이지만 사실 이들 곡은 많은 음반이 나와 있지 않다. 이들 곡을 녹음한 유명한 지휘자도 카라얀 외엔 없다. 알고 보면 참으로 아름답고 훌륭한 명곡이지만 음반이 나와 있지 않아 빛을 보지 못하는 부조리. 바로 그 부조리를 카라얀이 혁파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라얀이 지휘하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카라얀이 지휘하는 파헬벨의 캐논 D장조.

홀스트의 행성이란 곡도 그렇다. 영국 출신의 작곡가 구스타프 홀스트가 작곡한 이 곡은 홀스트 본인의 음반이 발매된 후 꽤 오랜 세월동안 빛을 보지 못하였으나 카라얀이 레코딩하였고 베스트셀러가 되며 고금의 명곡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라얀이 지휘하는 홀스트의 행성 중 목성-즐거움을 가져오는 자.

음반이 많이 나오지 않은 곡은 유명하지도 않고 그러므로 예술적 가치가 떨어진다? 우선 듣기 좋은 것이 예술이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풍족하게 해주고 감동을 준다면 그것이 또 예술이다. 연주하는 사람 혼자서만 느껴대는 예술이라면 그게 예술인가?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아주, 아주 많은 음반이 나와 있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음반과 알비노니의 아다지오가 수록된 음반 중 하나를 골라잡으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을 후자를 택할 것이다. 예술도 우선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부터 시작되는 것 아닐까?
이를 볼 때 카라얀은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고 그들을 충족시키는 음악을 만드는 능력이 대단히 탁월했음을 알 수 있고 그 탁월한 능력을 기반으로 그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그의 세계를 훌륭하게 구축했다.

카라얀이 남긴 명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있는 카라얀의 동상. 잘츠부르크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장이 모차르트의 고향이며 카라얀의 고향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국 시문학은 미당 서정주에게 8할을 빚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살고 있는 클래식 음악계는 과연 카라얀에게 몇 할 정도를 빚지고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엔 서정주만큼 8할, 또는 그 이상을 빚지고 있다고 해도 절대 과언은 아니다.

카라얀이 남긴 음반들을 간단하게 정리하여 표현하자면 '전과목 평균 90점 이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카라얀은 어느 누구도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레코딩을 하였고 그 음반들의 레퍼토리 또한 무척 다양하다. 우선 작곡가별로 구분했을 때 독일어권 고전주의 작곡가의 곡들인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를 시작으로 베토벤, 슈베르트를 넘어 낭만주의 작곡가인 슈만, 바그너, 브루크너, 브람스, 말러, R. 스트라우스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양의 곡을 모두 섭렵했다.

독일어권 작곡가뿐이 아닌 프랑스,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들의 곡 또한 마찬가지였다. 비발디, 로시니, 베르디의 곡부터 시작하여 푸치니의 오페라와 베를리오즈, 비제, 드뷔시, 라벨의 곡까지 섭렵하며 엄청난 양의 레코딩을 했고 이들 레코딩은 모두 최상의 수준급을 자랑한다. 카라얀의 평생을 두고 강박관념으로 자리잡았던 푸르트벵글러도 이탈리아 작곡가의 오페라까진 손대지 못했다. 또한 카라얀 시대에 카라얀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손꼽히는 뵘, 번스타인 역시 라틴계 작곡가들의 곡과 오페라에까진 그 영역을 넓히진 못했다.

카라얀이 남긴 모든 음반이 명반일 순 없다. 그러나 그가 남긴 음반들의 대부분은 명반에 속한다. 모든 과목에서 90점 이상을 맞진 않지만 평균 90점 이상은 반드시 보장하는 지휘자. 아마 카라얀이 유일무이할 것이다.

카라얀이 너무도 많은 음반 중 명반에 속하는 것 중 교향곡부터 살펴본다. 카라얀의 최전성기를 1970년대 베를린 필을 지휘하던 시절로 보는 것은 이견이 없다. 바로 이 시기에 카라얀이 가장 공들여 작업한 작곡가는 그래도 독일 작곡가의 곡인 베토벤, 브람스, 브루크너 등, 말러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음반은 카라얀의 음반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으며 특히 베토벤 교향곡은 베를린 필과 함께 4번 이상을 녹음했다. 베토벤-카라얀-베를린 필로 이어지는 상징성. 그 상징성 때문이라도 베토벤 교향곡은 카라얀의 음반을 1순위로 두기엔 무리가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푸르트벵글러, 발터, 뵘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필히 소장할 가치가 있는 음반이라고 하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베토벤뿐만 아니라 브람스, 브루크너, 말러 역시 카라얀의 음반을 가장 먼저 들어보고 다른 지휘자의 음반을 들어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이유는 첫째, 앞서 수차례 언급한 것처럼 카라얀은 곡의 핵심을 가장 잘 짚어내어 듣기 좋은 최상의 사운드를 만들어낸 것이며 둘째, 카라얀의 음반은 그 음질면에 있어서도 동시대를 살았던 지휘자들의 음반과 비교했을 때 최상급이었다. 카라얀은 잠깐이나마 공학을 전공하였고 그의 공학적 마인드는 음반을 제작할 때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팩터를 고려하여 매우 치밀하게 구상하고 최상의 음질을 만들어낸 사람이었다. 핵심을 짚어내는 탁월한 해석과 완벽에 가까운 치밀한 성격이 어우러진 음반이라면 카라얀의 음반을 먼저 들어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프랑스, 이탈리아 작곡가의 작품들로 넘어가본다. 우선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 명이며 프랑스의 교향곡을 대표하는 곡인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본다. 환상교향곡은 너무도 많은 음반이 있기에 어떤 음반이 최상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겠으나 1순위로 꼽을 수 있는 음반이라면 프랑스 출신의 지휘자인 샤를 뮌쉬의 음반과 카라얀의 음반을 들 수 있다. 이 곡의 마지막 악장을 들어보면 카라얀의 자의적 해석이 빛을 발하는데 어느 지휘자도 시도하지 않았던 실제 교회의 종소리를 집어넣은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카라얀만이 할 수 있는 용기있는 시도란 점에선 충분히 높게 평가할만하며 바로 이 점 때문에라도 카라얀이 남긴 이 음반은 동곡 최고의 명반으로 꼽힌다. 베를린 필과 베를리오즈의 곡. 어찌보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라고 생각되지만 바로 카라얀이었기에 이는 최상의 조합을 가능하게 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라얀과 베를린 필이 연주하는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중 5악장 '사바의 밤의 꿈(Songe d'une nuit de sabbat)

이번엔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 작곡가의 곡들도 한 번 살펴본다. 우선 러시아의 대표 작곡가인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을 보면 카라얀은 차이코프스키의 6번 교향곡을 무려 6번 이상 녹음할 정도로 많은 애착을 기울였다. 베를린 필을 이끌기 전부터 이 곡을 녹음하였고 베를린 필, 빈 필 등을 이끌면서 그의 최만년인 80년대 중반까지도 이 곡을 녹음할 정도로 애착이 많았다. 차이코프스키의 후기 3대 교향곡인 4, 5, 6번의 명반을 이야기할 때 최정점에 있는 음반을 딱 하나만 꼽는다면 당연히 에브게니 므라빈스키의 음반을 십중팔구는 선택하겠으나 므라빈스키, 스베틀라노프 등의 러시아 지휘자를 제외한 차선이 누구인지에 대해 논한다면 당연히 카라얀이 꼽힐만큼 카라얀은 러시아 작곡가의 곡 해석에도 발군이었다. 그 외에도 차이코프스키의 듣기 편하고 유명한 발레 모음곡이랄지 많은 관현악곡 역시 카라얀의 손을 거치며 너무도 세련된 아름다움을 맘껏 들려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드보르작, 시벨리우스 교향곡 역시 카라얀의 음반을 빼놓을 수 없다. 드보르작 9번 교향곡은 라파엘 쿠벨릭의 음반과 함께 가장 유명하고 가장 잘된 명반으로 꼽히고 로스트로포비치와 협연한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역시 이 곡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명반 중의 명반으로 꼽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독일어권 지휘자들이 잘 다루지 않는 시벨리우스, 그리그 등의 작품을 해석한 것도 참 이채롭다. 그의 최전성기라도 보기 힘든 1960년대 초반에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을 녹음하였다. 시벨리우스 교향곡의 전설인 존 바비롤리의 명성을 뛰어넘을 정도의 그레이드를 자랑한다고 볼 수 없겠지만 어쨌든 그가 다루는 음악의 레퍼토리가 얼마나 다양한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카라얀은 교향곡, 관현악곡의 지휘를 무척 많이 했고 모든 음반에서 최상급의 기록들을 남겼지만 진정 그가 가장 많은 공을 들여 작업한 작품들은 바로 오페라였다. 언어가 다르기에 해석의 코드가 완전히 다른 독일어와 이탈리아어 오페라를 모두 지휘하며 이들 모두를 완벽에 가깝도록 지휘할 수 있는 사람은 단연 카라얀 외엔 없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바그너, 스트라우스의 오페라에 많은 공을 들였고(그가 세운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맨 처음 연주한 곡이 바로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이었다) 훌륭한 오페라 지휘자가 되길 원했다.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오페라 또한 많이 다루었다. 베르디, 푸치니 등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의 오페라를 녹음하여 불후의 명반들을 남겼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라얀. 그는 생전에 2억 7천만 달러가 넘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고 자가용 비행기를 끌고 다녔던 사람이었다. 그가 권좌에 앉아있는 재위기간동안 그의 라이벌로 거론될 수 있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의 자리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보수일색인 클래식 음악계에서 두 번 다시 나오기 힘든 불세출의 스타였고 그 스타성 때문에 혹평도 많이 받았다. 그는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충족하는 방법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실천했다. 누구보다 많은 양의 음반을 남겼고 그가 남긴 음반의 대부분은 최상의 등급을 자랑하는 명반으로 꼽힌다.

성공을 위해 도덕과 윤리를 저버리는 일도 많았고 끝 간 데 없는 자존심은 오만함으로 비춰져 많은 사람들과 불화를 일으켰다. 그러나 카라얀에 대한 그 어떤 혹평도 모두 수렴할 수 있는, 카라얀을 상징하는 단 한 마디가 있다.

'그럼 당신은 그만큼 할 수 있는가?'

누군가를 반대하고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그 어떤 논리도 반대를 위한 논리를 위해 존재하며 정당성을 담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똑같은 조건에서, 아니 그보다 더 나은 조건에서 반대하고 비판하는 것만큼, 그 비슷한 수준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일을 그만큼 했던 사람. 그래서 좋아하긴 힘들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

카라얀에 대한 길고도 길었던 글은 이 문장을 끝으로 마친다.
Posted by snipe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