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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네리안(Wagnerian)들이 환장하게 좋아하며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도시와 그 도시의 이름이 등장하는 유명한 오페라가 있다. 바로 뉘른베르크의 마스터징거(Meistersinger, 명가수)이다. 무려 4시간 20분의 상영시간이 소요되는 이 장중한 오페라는 바그너가 남긴 오페라 작품 중 공연시간, 비용에서도 가장 많은 양이 요구되는 걸작 중의 걸작이다.

그 내용이 또한 대단히 선동적이고 혁명적이다. 대충의 줄거리를 살펴볼까?

독일 남부에 자리잡고 있는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 뉘른베르크에서 성요한축제일에 마이스터징거들의 노래경연에 참가하여 우승하는 자는 금세공사의 딸인 에바와 결혼을 하게 되는 자격이 주어진다. 에바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기사 발터 폰 스톨칭, 그리고 에바를 짝사랑하는 한스 작스란 구둣방 주인이 또 나오고 에바를 차지하려는 악역 베크메사라는 인물이 또 나온다. 암튼 이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선 마이스터징거 조합에 가입을 해야 하는데 발터는 뛰어난 노래실력에도 불구, 조합원에 가입할 수 있는 시험에 낙방한다. 이에 낙심한 발터와 에바는 사랑을 위한 도피를 계획하게 되고 비록 자신의 적이지만 발터의 뛰어난 노래실력에 감동한 한스란 인물이 어찌어찌 손을 써서 발터를 우승하게 만든다는 내용이다.

액면가로 보면 별 내용이 없어 보이지?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 오페라엔 애들 동화같은 유치한 내용들로 꾸며진 것 같지만 보다 무섭고 선동적인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우선 발터가 가입하려다 실패한 마이스터징거와 발터의 대척점에 서있는 인물인 베크메서란 인물은 중세시대 독일이 무너뜨려야 하는 혁명의 대상이란 의미가 있다.
그리고 베크메서는 그 당시 독일에서 많은 부를 축적하고 많은 이들에게 미움을 받았던 유태인을 의미한다. 베크메서가 유태인이란 점은 100% 진실은 아니지만(바그너가 이를 명시한 것은 아니기에) 대부분이 이를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음흉하고 목적을 위해선 부도덕한 수단을 쓰는 것을 잘못이라 여기지 않는 베크메서란 상징적인 인물을 대표로 내세우고 베크메서의 행동이 유태인의 그것과 같다는 것을 은연중에 내비침으로서 반유대적 사상을 전파하는데 힘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베크메서와 마이스터징거 조합이 구태의연하고 부도덕을 일삼아 개혁해야 할 대상이라면 개혁의 주체는 당연 발터이다. 발터는 새롭고 깨끗한 사상과 투철한 도덕성으로 중무장하여 기존 독일의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혁명국가를 내세우는 중임을 맡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혁명을 받아들이는 절충적인 입장을 취하는 인물이 구둣방 주인 한스 작스이다.

자. 이와 같은 관계를 놓고 봤을 때 이 오페라의 내용이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서 얼마나 홱까닥 돌아버리게 할 수 있는지 좀 짐작이 가시는가? 이 오페라를 본 사람 중에 그 이름도 유명한 아돌프 히틀러는 이 오페라를 너무도 사랑하여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의 전당대회 때 프로그램으로 포함시켰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어디 그뿐인가? 히틀러가 어릴적 부터 이 오페라에 나온 곡조를 모두 휘파람으로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였고 뉘른베르크란 도시를 얼마나 사랑했던지 나치의 본거지 역시 뉘른베르크에 정해 1930년대 중반에 매년 나치 전당대회를 열었던 것이다. 결국 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의 도시 뉘른베르크는 후세의 미치광이들에 의해 피비린내의 본거지가 되어 과거를 청산하고 그 오명을 벗어나는데(2001년 뉘른베르크시는 유네스코 인권상을 받았다) 너무도 오랜 세월이 걸렸다. 

물론 바그너가 후세인들에게 배타적 민족우월주의를 직접적으로 심어준 것은 아니었다. 바그너의 손자인 볼프강 바그너를 비롯한 바그네리안들은 이 점을 분명하게 주장한다. 바그너가 살았던 당시의 독일은 주변의 강대국들에 비해 뒤떨어진 국민성과 국력으로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웠던 지경이었고 유태인들은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에서도 미움과 질시의 대상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나 바그너가 의도했든 아니했든 간에 이를 받아들여 왜곡된 시각으로 해석, 수많은 인명을 해치고 아픔을 안겨준 히틀러와 나치의 잘못은 아무리 벌해도 그 죄를 단 1%라도 경감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전당대회 모습. 수많은 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도열한 가운데 히틀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바로 이 곳에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가 장엄하게 울려퍼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예술인들 중 푸르트벵글러라고 이 광품을 피할 수 있었을까? 1942년 나치전당대회에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서곡을 지휘하고 있다.


1943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히틀러. 바그너의 며느리인 빈프레드 바그너의 모습이 보인다. 히틀러가 나타나자 열광하며 감격의 눈물마저 흘리는 독일국민들의 모습이 보이며 뉘른베르트의 명가수가 배경음악으로 장엄하게 울려퍼지고 있다.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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