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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가 남긴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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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음악을 일컬어 흔히 천의무봉(天衣無縫)이란 표현을 쓴다. 하늘에 사는 천사들이 입는 옷은 인위적인 손길이 미치지도, 미칠 이유도 없다는 뜻이며 그만큼 자연스럽고 그 자체로 완벽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천의무봉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살리는 모차르트를 재현해낸 지휘자는 누가 있을까하는 물음을 음악애호가들에게 던진다면 아마 십중팔구는 ‘단연 브루노 발터’라고 외칠 것이다.

천의무봉의 경지. 어쩌면 발터는 그가 태어난지 1세기 전에 사망한 모차르트의 음악이 이토록 자연스럽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태어난 지휘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만큼 그가 만드는 모차르트를 비롯한 모든 작곡가의 음악은 인위적으로 꾸밈이 없고 자연스러우면서도 기품이 있고 따스한 미풍과도 같은 편안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발터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두 명의 마에스트로인 토스카니니, 푸르트벵글러와 비교할 때(토스카니니와 푸르트벵글러는 너무도 다른 삶과 음악을 지향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을 비교는 토스카니니에 대한 글을 쓰며 상술할 계획이다) 또 다른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하였다. 토스카니니가 강직하고 완벽함을 추구하였고 푸르트벵글러가 주정(主情)적이고 혁명적인 면을 꾀하였다면 발터는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가장 아름다운 심미안을 가지고 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였던 낭만적인 음악가였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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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엘리자베스 슈만의 피아노 반주를 해주고 있는 발터. 발터는 매우 뛰어난 실력의 피아니스트이기도 했고 그가 피아니스트가 되었다면 대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슈만. 이 여자가 또 골때리는 여자다. 유부녀 주제에 지휘자 오토 클렘페러와 바람을 피우다가 날벼락을 맞는다.

발터의 전성기를 크게 1기와 2기로 나눌 수 있다면 1기 전성기를 구스타프 말러와 함께 있었던 빈 궁정 가극장의 악장으로 있었던 11년 간의 시기로 보는 견해엔 이견이 없다. 이때야말로 발터가 그의 예술적 성장을 위해 가장 많은 양분을 흡수하며 탄탄한 거목으로 성장해 나가는 매우 중요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척 아쉽게도 이 당시 발터의 전성기 시절의 활약을 확인할 순 없다. 발터는 50이 다된 나이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레코딩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음반으로 그의 음악을 접할 수밖에 없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젊은 시절의 전성기가 레코딩과 결부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면 생의 마지막 투혼을 불태운 제2의 전성기는 활발한 레코딩 때문에 비롯된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건강상의 이유로 한 번 은퇴를 한 80세의 백전노장이 뜻을 꺾고 다시 복귀한 무대인 컬럼비아 오케스트라. 바로 발터를 위해 만들어진 이 급조된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주옥같은 명반들은 지금껏 스테디셀러로 자리 매김하며 발터의 음악세계를 논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바로미터로 쓰이고 있다.

앞서 천의무봉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발터의 음악이 마치 모차르트에 편중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착각을 일으킬 수 있는데 결코 아니다. 발터는 동시대를 살았던 지휘자 중 상당히 레퍼토리가 다양했던 거장 중의 하나였다.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작곡가가 바로 모차르트이고 그 다음엔 그의 스승이었던 말러, 그리고 슈베르트, 브람스, 베토벤, 브루크너 등이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그리고 모차르트와 말러, 브람스. 동일선상에서 액면가로 보고 판단하기엔 절대 어울릴 수 없을 듯한 작곡가들의 음악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지휘자의 편협한(혹은 독특한) 철학과 개성이 개입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고 그리 되었을 땐 대단히 잘된 명연이 나오거나 졸연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모차르트나 하이든을 해석할 땐 그에 맞는 감성적 코드로, 베토벤이나 브람스, 말러를 해석할 땐 또 그에 맞도록 알맞은 변신이 필요하다는 의미인데 발터는 이토록 어울리지 않는 작곡가들의 곡을 모두 발터의 모차르트, 발터의 베토벤, 브람스, 말러로 훌륭하게 해석하였다.

발터만의 스타일임이 확연히 느껴지는 따스함, 고귀하고 품위가 넘치는 인간미가 모차르트를 들을 때에도, 베토벤이나 브람스, 말러를 들을 때에도 언제나 잔잔히 흐르고 있음이 느껴진다. 결코 과도한 낭만으로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성적이면서 절제와 중용이 느껴지는 음악. 바로 그것이 발터의 음악이며 그가 떠난지 반세기가 지난 이 시점에서 수많은 음악애호가들이 조악한 음질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반들을 꾸준히 찾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할 것이다. 

발터가 남긴 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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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발터. 이렇게 수염을 길렀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부터는 발터가 남긴 명반들을 살펴본다.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발터가 활약한 시대를 크게 4등분한다면 20세기 초반에 빈 궁정 가극장의 악장으로 있었던 11년 간과 그 후 전쟁이 발발하기 전 빈과 잘츠부르크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던 시절, 그리고 미국에 망명한 후와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복귀한 1950년대의 중, 후반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에서 구입이 용이하고 지명도가 높은 음반을 레코딩한 시절은 2차대전 이후 미국에 망명한 다음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전의 음반들은 구하기도 쉽지 않고 음질이 너무 조악해서 ‘브루노 발터’라는 이름 때문에 소장할 가치는 있겠지만 감상용으로는 결코 좋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자면 일본에서 염가판으로 나온 'Art of Bruno Walter'라는 제목의 10장 세트의 모음집이 있다. 발터의 초창기 활동 당시의 녹음들을 모은 음반인데 음질이 무척 좋지 않다.

우선 그가 미국에 망명한 이후 손발을 맞추며 많은 레코딩을 했던 뉴욕필과의 음반부터 알아본다.

발터와 뉴욕필은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말러 교향곡 등 그가 가장 자신 있게 평생을 두고 연주했던 수많은 명곡들을 함께 작업했다. 이 당시에 나온 음반들 역시 훗날 컬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했던 음반들처럼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최고의 명반들임이 분명하나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며 누구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두 가지만을 고른다면 슈베르트 교향곡 8번과 모차르트의 중기와 후기 3대 교향곡 음반을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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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노 발터와 뉴욕 필이 지휘하는 모차르트 교향곡 25번의 3악장.

Bruno Walter (conductor)
Columbia Symphony Orchestra
녹음: 1954/12/10 Mono
장소: 30th Street Studio,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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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와 뉴욕 필이 연주하는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의 1악장.

Bruno Walter (conductor)
New York Philharmonic
녹음: 1958/03/03 Stereo, Analog
장소: St. George Hotel, Brooklyn, New York

나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모차르트 후기 3대 교향곡은 발터의 음반을 듣는 것이 하나의 습관처럼 되어 있으나 그 중에서도 특히 41번 ‘쥬피터’를 좋아하고 또 그 중에서도 특히 1956년 뉴욕필과 함께 한 음반이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 ‘쥬피터’ 중 가장 아름답고 듣는 이의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는 최고의 ‘쥬피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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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와 뉴욕필이 연주하는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의 1악장.

Bruno Walter (conductor)
New York Philharmonic
녹음: 1956/03/05 Mono
장소: New York

80세가 넘은 발터가 건강문제도 마다하고 다시 복귀하여 지휘봉을 들게 했던 컬럼비아 오케스트라와의 음반은 어떨까? 생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불태웠던 발터답게 대단히 의욕적인 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모차르트의 중요한 교향곡을 녹음했고 베토벤 교향곡 전곡, 브람스 교향곡 전곡, 그리고 굵직한 관현악곡들을 모두 녹음했다. 드보르작 교향곡과 말러 교향곡 역시 이 때 다시 녹음하였고 스테레오 사운드 녹음이라는 매력적인 신기술이 더해지며 이전에 발터가 녹음했던 음반들과는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해준다.

발터하면 떠오르는 관현악곡이 모차르트이지만 베토벤 역시 발터의 음반들을 빼놓을 수 없다. 다른 건 몰라도 6번 ‘전원 교향곡’이야말로 발터의 음악세계와 가장 잘 어울리는 베토벤 교향곡이고 발터가 남긴 ‘전원’은 칼 뵘의 음반과 함께 동곡 최고의 음반으로 당연히 꼽히는 명반 중의 명반이다. 1936년 빈 필과 함께 녹음한 음반도 있고 1946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게 한 음반도 있지만 지명도로 보나 완성도로 보나 컬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1958년 음반이 최고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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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와 컬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의 2악장.

Bruno Walter (conductor)
Columbia Symphony Orchestra
녹음: 1958/01/13,15,17 Stereo, Analog
장소: American Legion Hall, Hollywood, California

브람스의 음악은 발터와 잘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 역시 발터만의 포근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하지만 브람스 특유의 비장함을 잘 살리고 있다. 특히 브람스 교향곡 3번과 4번이 최고의 명연으로 꼽히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발터의 브람스는 교향곡 3번의 3악장이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한없는 감성에 젖어들게 하는 이 3악장은 발터의 인간미 넘치는 해석이 어우러지며 가장 아름다운 브람스를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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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와 컬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브람스 교향곡 3번의 3악장.

Bruno Walter (conductor)
Columbia Symphony Orchestra
녹음: 1960/01/27,30 Stereo, Analog
장소: American Legion Hall, Hollywood, California


젊은 발터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었고 발터가 평생을 두고 존경했던 스승 말러의 교향곡을 알아본다. 말러 교향곡의 1순위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말러리안 각자의 해석과 호불호에 따라 엇갈리겠지만 레너드 번스타인, 카라얀, 아바도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건 몰라도 말러의 ‘대지의 노래’는 발터의 음반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적인 명반이다. 여러 종류가 있겠으나 특히 1952년 빈 필과의 음반을 최고의 명반으로 꼽는데 큰 이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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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노 발터-페리어-파착과 빈 필이 함께 한 말러의 '대지의 노래' 중 제1곡 'Das Trinklied vom Jammer der Erde'.

Kathleen Ferrier (Contralto)
Julius Patzak (Tenor)
Bruno Walter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r
녹음: 1952/05/15,16 Mono
장소: Vienna

브루노 발터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토스카니니, 푸르트벵글러만큼 혁명적인 시도를 통해 클래식 음악계에 크나큰 파장을 일으켰던 지휘자는 아니었다. 또한 그들처럼 정치적 압력에 적극적인 항명을 하거나 굴복하여 큰 문제를 야기했던 것도 아니었다. 카라얀만큼 많은 음반을 남긴 것도 아니고 많은 작곡가의 곡을 섭렵한 것도 아니었다. 또한 그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지휘자들-토스카니니, 클렘페러, 셀, 므라빈스키 등-처럼 독재적인 카리스마로 단원들을 휘어잡았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토스카니니나 푸르트벵글러, 혹은 카라얀만큼 드라마틱하고 이야기거리가 많은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발터가 남긴 주옥같은 음악들은 과연 발터가 아니었다면 누가 이처럼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멜로디를 그려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발터만의 확고한 음악세계를 구축하였다. 멜로디 하나하나 그 어디에도 가식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꾸밈없는 자연스러움. 천의무봉이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지휘자는 단연 브루노 발터뿐이며 발터 이후의 그 어떤 지휘자에게서도 이와 같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느껴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후 세대에 등장할 그 어떤 지휘자의 음악에서도 발터만큼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그만큼 브루노 발터는 위대하고 고매한 인격자였고 그 인격을 그대로 음악으로 전사할 수 있는 지휘자는 결코 흔치 않기 때문이다.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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