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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티비 등의 간접매체를 보면서 너무 흥분하여 티비 속으로 뛰어 들어가 확~ 그냥! 이처럼 살인충동을 느끼게 한 이들이 있었다. 그야말로 악역 중의 악역들이었다. 이는 역으로 표현하자면 그 역할을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도 훌륭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내 기억 속에 그토록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 그 첫번째 악역들은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 등장한 악역들이었다. 최대치의 오장 오오에, 그리고 장하림의 직속상관이던 미다(三田) 대위, 그리고 훗날 독립운동을 하는 장하림과 윤여옥에게 모진 고문을 하고 장하림과는 끝없는 악연을 잇게 되는 고등계 형사 스즈끼, 그리고 극렬 친일파 박춘금이었다.



이들 배역을 맡았던 연기자들은 오오에 역엔 장항선, 미다 역엔 김흥기, 스즈끼(광복 후엔 다시 최두일 형사로 둔갑한다) 역엔 박근형, 그리고 박춘금 역엔 변희봉 이었다.
이 중에 더 추려서 살인충동을 일으킬만큼 흥분하게 만들었던 사람 둘을 압축해보자면 광복 이후에도 아주 버젓이 잘 살았던 스즈키, 최두일과 박춘금이었다. 이들은 한국 역사의 부끄러운 단면을 아주 여실히 보여주는 일례라는 점에서 이 땅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살인충동이 일어날 만큼 치욕스럽 신경질이 나는 역사를 마치 몸 안의 종양처럼 어쩔 수 없이 안고 사는 꼴과 같다.
(이 드라마를 볼 당시엔 박근형 아저씨를 너무나 미워했었다. 하지만 더 나이가 들면서 박근형 아저씨가 대단한 연기자임을 확인해 준 반증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엔 한국 최고의 탤런트는 단연 박근형 선생이라고 말한다)

최두일, 박춘금은 세상이 180도로 뒤바뀌어도 끝끝내 살아남았다. 이들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때론 이렇게, 때론 저렇게 변신하는 파렴치한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에 비해 오오에와 미다는 순수 일본인이었고 역사의 확신범들이었다. 그 확신이란 태어나서부터 배운 것이 일본인의 위대함, 그리고 대동아건설의 정당성이었고 일본 제국주의는 자국의 국민들에게 제국주의사상을 끊임없이 주입시키며 전국민을 그렇게 미치광이로 만들었다. 그렇게 그들은 미쳤을 뿐이었다. 그렇게 미쳤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 조차도 몰랐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사람을 죽이는 것도 미쳐버린 그들에겐 죄가 아니었다. 어찌 보면 그들 역시 미친 시대에 미친 나라에서 태어났기에 그렇게 미쳐버린 희생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오에와 미다 중 내게 더욱 더 강렬한 인상으로 남은 자는 미다 대위였다. 동경제국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인텔리 중의 인텔리이며 뼛속까지 일본제국주의의 광기가 제대로 박혀버린 자. 너무 똑똑했던 그는 미쳐도 너무 단단히 미쳐버린 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미친 세상이 조종하는대로 살다가 이억만리 타국땅 사이판에서 조국의 패망소식을 들은 후 감옥에서 자살한다. 그다운 최후였다.
미다는 자살하기 전 그가 인간 이하로 취급했던 장하림(하리모토)에게 이런 말을 한다.


-너 같은 조센징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의 정신이다. 일본은 지금 졌지만 언젠가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 그것은 일본의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무사답게 죽고 싶다. 자살하게 도와달라-


난 미다 대위라는 자를 보면서, 그가 그토록 영혼을 바쳤던 조국의 패망 앞에서도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 자를 보면서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일본이란 나라에, 아니 전 세계 그 어디에도 두 번 다시 미다 대위 같은 자가 나타나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미다의 망령은 지금도 야스쿠니 신사 주위를 배회하며 끝없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사실. 이 또한 경계해야 할 무서운 현실이다.

역사의 확신범. 그는 절대적 진리가 없는 세상에 때론 무섭게, 때론 존경스러운 존재로까지 보여진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조차 판단이 서지 않는 혼란의 시대에 그들은 판을 친다. 난 미다 대위를 보며 역사의 확신범이란 저런 인간이구나 함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는 너무 대단한 자였다. 단, 너무 단단히 미쳤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엄존하는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때론 분노했고 때론 푸념하며, 때론 슬픔에 잠겨 보았던 추억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그 드라마에서 역사의 확신범이란 존재를 처음으로 내게 알려준 미다 대위. 그 미대 대위 역을 소름끼치도록 열연했던 명배우 김흥기 님이 작고하셨다. 향년 63세. 그것도 무려 5년간이나 의식불명으로 투병생활을 하신 후에.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또 한 분의 큰 배우를 잃어야 하다니.

그 때 그 시절. 내 가슴 속에 너무도 강렬하게 남아있는 미다 대위를 보여주신 분. 그렇게 소름끼치도록 연기를 잘하셨던 분. 故 김흥기님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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