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324)
김소연 (59)
Classic Music Story (19)
Artist Story (46)
세상을 보는 눈 (122)
MLB Story (26)
KBO Story (13)
Fun Video (9)
Drama 보기 (9)
좋은 정보 (6)
In my mind (3)
그 시절의 pop story (9)

최근에 올라온 글

Total
Today
Yesterday
05-06 00:01
감사해요 사랑해요 잘했어요 함께해요

달력

« » 2024.5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말년의 호로비츠와 그의 아내인 완다 토스카니니 호로비츠.


강건우와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베토벤 바이러스 14회엔 실질적인 지휘자 첫 데뷔무대를 갖는 주인공 강건우가 피아니스트 서혜경과 함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에 앞선 이전 회(13회)에서 건우에게 어떤 곡을 지휘하겠냐고 묻는 강마에에게 건우는 세 가지 곡을 언급한다. 하나는 차이코프스키의 1812 서곡, 그리고 말러 교향곡, 또 하나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세 곡 모두 초짜 지휘자 강건우가 역시 초짜들인 아마추어 악단을 동원해서 지휘할 수 있는 곡들이 절대 아니다. 모차르트나 하이든의 관현악곡 등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대규모의 오케스트라가 동원될뿐더러 말러와 스트라빈스키 음악 특유의 난해성, 그리고 음악들이 무척 길고도 지루하기 때문이다. 이때 강마에는 피아니스트와 협연을 통해 솔리스트에게 묻혀가라고, 그게 가장 안전하다고 강요한다. 이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곡의 선택이 상당히 무리가 있다. 바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기 때문이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왜 이토록 어렵고도 어려운 난곡을 선택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제작진의 의도를 알 순 없지만 이 곡보다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하는 것이 숫적으로 적고 경험도 일천한 단원들을 데리고 지휘하는데 있어서 좀 더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지휘자로 데뷔한 강건우는 아마추어 단원들을 데리고 뛰어난 연주를 들려주고 있었으나 시장과 강마에의 방해로 그 좋았던 연주가 아사리판이 되어버리는 장면이 등장하였는데 인간승리의 주인공 피아니스트 서혜경의 대단한 연주를 보고 들을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이 드라마를 감상하는 본전은 뽑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였다.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중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함께 가장 스케일이 크고 훌륭한 작품이라는데 있어서 이견이 없다. 차이코프스키가 남긴 3곡의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나머지 2, 3번은 연주의 빈도수, 발매된 음반 수에 있어서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그래서 통상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이라고 하면 1번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또한 차이코프스키 이전에 작곡된 슈만, 리스트, 쇼팽, 그리그 등의 피아노 협주곡은 스케일, 난이도, 작품성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이 그와 견줄 수 있을 정도라고 할까?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이 곡보다 더 웅장하고 박진감 넘치고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네 대의 호른이 빰빰빰빠~ 하며 동시에 울려 퍼지고 이어 시작되는 관현악의 강한 울부짖음, 그리고 피아니스트의 압도적인 타건으로 시작되는 곡. 1958년에 시작된 차이코프스키 콩쿨의 연주곡으로 쓰인 후엔 더더욱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정복하고자 하는 이 곡.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과 함께 그 인지도와 연주빈도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얻는 고금의 명곡인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역대 피아니스트 중 이 곡을 가장 잘 연주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작곡, 초연, 호평-많은 사연과 곡절

차이코프스키는 피아노 협주곡 1번을 1874년 12월에 작곡하였다. 우울하고도 곡절이 많았기에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차이코프스키에게 있어서 1874년을 전후한 시기는 이례적으로 조용하고도 평화로운 시절이었다. 그 유명한 4번 교향곡을 작곡하기 전이었고 결혼생활에서의 실패도 있기 전의 시절이었다.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을 약 1개월 남짓의 짧은 기간동안 속성으로 작곡하였고 스스로 큰 만족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스승이었던 안톤 루빈스타인의 동생이자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의 한 명이었던 차이코프스키의 절친한 친구인 니콜라이에게 악보를 보여주며 초연을 부탁하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하고 만다. 기교적으로 너무 어려워 도저히 연주를 할 수 없고 구성 또한 너무 난잡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실 이와 같은 일들은 차이코프스키에겐 흔한 일이었다. 교향곡을 비롯하여 그가 남긴 또 하나의 걸작 협주곡인 바이올린 협주곡도 이에 못지 않은 혹평을 받아야만 했다)

니콜라이 루빈스타인.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적 동지였고 당대를 주름잡았던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었다.

친구 니콜라이는 조금의 수정을 가한다면 연주할 수도 있다는 단서를 달며 차이코프스키에게 간곡히 부탁하였으나 자존심 강한 차이코프스키는 크게 실망하며 단호히 거절한다. 그리고 너 아니면 피아니스트가 없는 줄 아느냐는 배짱을 부려 원래 의도했던 니콜라이 루빈스타인 대신 당대 최고의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떨쳤던 한스 폰 뵐로에게 이 곡의 초연을 의뢰하였다.
한스 폰 뵐로의 반응은 니콜라이와 180도로 달랐다. 악보를 본 폰 뵐로는 크게 만족하며 기꺼이 초연을 맡겠다고 수락하였다. 그리고 1875년 10월 25일에 이루어진 보스턴에서의 초연은 폰 뵐로의 예상대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2년 반이 지난 1878년 3월에 루빈스타인의 지휘로 모스크바에서 초연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사실 위의 내용들은 이 곡을 좋아하는 애호가라면 누구든 알만한 유명한 일화이고 베토벤 바이러스 14회에서 강건우도 청중들앞에서 하는 대사이다. 그러나 강건우의 대사에서 사실과 맞지 않은 내용이 있다. 차이코프스키는 끝끝내 이 곡의 악보를 수정하지 아니한 것을 나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1889년에 이르러서야 차이코프스키는 오케스트라 파트를 수정한 것으로 되어 있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연주들


20세기에 활동한 수많은 피아니스트 중 가장 뛰어난(어찌 보면 기교적으로 뛰어나다는 뜻으로 국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피아니스트가 누군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적어도 절반 이상에 달하는 응답자들은 아마도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를 답할 것이라 생각한다. 호로비츠의 연주는 호로비츠 이전과 이후를 통틀어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자였다. 과연 인간이 이런 연주를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과연 어떻게 한 대의 피아노로 이런 연주까지 가능할 수 있었을까? 등의 기가 막힌 감탄이 섞인 물음을 던지게 하는 유일한 피아니스트가 바로 호로비츠였으니 말이다.

호로비츠에 대한 길고도 긴 설명은 이전 포스팅(블라디미르 호로비츠-1. 피아노의 엔터테이너, 블라디미르 호로비츠-2. 그가 남긴 음악)에 자세히 적어 놨으니 참고할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라고 호로비츠가 그의 최전성기인 1930~1950년대의 초반까지의 음반들을 들어보면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괴력, 마력의 연주가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다. 가히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뛰어난 피아니스트란 극찬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호로비츠가 가장 잘, 즐겨 연주했던 레퍼토리를 작곡가별로 구분해보면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쇼팽, 스크리아빈, 그리고 슈만과 리스트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다. 다시 좀 더 압축하여 본다면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로 이야기할 수 있겠고 좀 더 압축하여 본다면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곡은 호로비츠가 평생을 두고 가장 즐겨 연주했고 어느 누구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실력을 보였던 장기 중의 장기였다.

호로비츠에게 이 곡은 또한 오늘날까지 호로비츠의 명성을 있도록 만든 출세작이었다.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러시아에서만 활약했던 젊은 피아니스트인 호로비츠가 최초로 서방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1925년 독일에서의 데뷔 무대 곡이 대타로 연주한 바로 이 곡이었다. 뿐만 아니다. 이듬해 미국에의 데뷔곡 역시 이 곡이었다. 영국 지휘자 토머스 비첨과의 협연으로 이 어렵고도 어렵다는 이 곡을 너무도 완벽하게,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무시무시한 스피드와 기교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미국의 청중들은 호로비츠를 보고 열광하게 된다. 또한 훗날 장인이 되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협연을 했던 곡도 바로 이 곡이었다. 그만큼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호로비츠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곡임에 분명하고 역사상 가장 완벽하고 뜨겁게 이 곡을 연주한 연주자 역시 호로비츠였다.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가장 잘 연주하는 연주자론 대략 4명을 꼽는다. 호로비츠,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에밀 길렐스, 그리고 현존하는 피아니스트인 철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 등이다. 그 외에도 가브릴로프, 베레초프스키, 마추에프 등 차이코프스키 콩쿨 우승 경력의 러시아 피아니스트의 이름을 이야기할 수 있겠고 너무도 유명한 제1회 차이코프스키 콩쿨의 우승자 반 클라이번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4명은 기교와 예술적인 완성도, 그리고 음반 발매 수 등에서 다른 어떤 피아니스트들 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중에서 내 취향으론 에밀 길렐스-로린 마젤, 에밀 길렐스-프리츠 라이너의 음반에 좀 더 많은 점수를 주고 가장 좋아하는 연주이긴 하지만 적어도 이 어려운 곡을 이렇게까지 연주할 수도 있다라는 경이로움에 관해선 호로비츠가 꽉찬 만점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호로비츠는 최전성기를 1930~1950년대까지로 보고 있는데 이 당시 은퇴와 복귀를 번복하고 그를 기다리는 애호가들의 애간장을 태우던 시절이었다. 카네기홀에서 열린 복귀무대를 보기 위해 길다랗게 줄을 서있던 사람들에게 호로비츠 부부가 커피를 나누어주었다는 일화까지 있을 정도이다. 그의 최전성기인 이 시절에 호로비츠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수 차례에 걸쳐서 녹음했다. 스튜디오 녹음도 있고 라이브 녹음도 있다.

왜 그토록 사람들은 호로비츠를 기다렸는지, 스튜디오 녹음보다 라이브에 훨씬 더 강했고 그의 라이브를 듣고 있으면 마치 전기에 감전이 되었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는데 그 무시무시함이 과연 어느 정도였는지 직접 감상해보겠다.

감상 포인트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은 1악장 처음의 빰빰빰빠~ 하는 네 대의 호른 소리가 무척 유명한데 이 부분때문에라도 1악장이 유명하지만 사실 1악장이 감상하기 썩 좋은 것은 아니다. 상당히 산만하게 느껴지고 구조적인 견고함에 있어서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의 1악장,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의 1악장,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의 1악장 등과 비교해서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어찌 보면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가장 위대한 2곡의 협주곡(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진정한 매력은 3악장에 있다고 해도 공감할 애호가들이 꽤 많을 것이라 믿는다. 속사포처럼 밀어 부치는 정신 없는 독주자의 연주와 이를 따라잡으려고 팽팽하게 대립하는 오케스트라의 으르렁거리는 싸움이 압권이다. 참고로 이 곡의 3악장만을 놓고 베스트를 추려본다면 길렐스-라이너의 55년 음반(RCA 레이블), 리히터-카라얀의 62년 음반(DG 레이블), 호로비츠-토스카니니의 41년 음반 (RCA 레이블) 정도를 들 수 있다. 하나 더 한다면 아르헤리치-콘드라신의 80년 음반도 들어갈 수 있다. 워스트는 키신-카라얀의 88년 음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음반은 워낙 탈도 많고 말도 많으니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 이 포스트에선 이 곡의 백미인 3악장의 연주를 호로비츠의 4가지 음반을 통해서 감상해보겠다. 물론 음질은 디지털 스테레오 시대의 음반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확연히 떨어진다. 하지만 호로비츠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음반은 음질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도 들을 수 있는, 들어야 하는 1순위 음반임은 부정할 수 없다.

호로비츠-존 바비롤리, 뉴욕 필(1940, APR 레이블)


카네기 홀 실황음반으로 음질이 무척 좋지 못하다. 당시의 녹음 수준으로 볼 땐 당연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찌그러진 소리가 감상에 매우 불편함을 준다.
바비롤리의 뉴욕 필 관현악이 호로비츠의 피아노를 따라가느라 급급하다. 전체적인 느낌은 매우 어둡고 호로비츠의 신경질적이고 광폭한 피아노가 돋보인다.

호로비츠-아르투로 토스카니니, NBC(1941, RCA 레이블)


호로비츠가 남긴 가장 유명한 음반. 그의 장인 토스카니니와 함께 협연 한 이 음반은 이 곡을 이야기할 때 빼놓아서는 안되는 명반 중의 명반이다. 토스카니니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무시무시한 괴력과 맞서는 호로비츠의 과감하고 강렬한 터치가 불을 뿜는다. 가장 개성이 뚜렷하고 기교적인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음반이며 이후에 나온, 나오게 될 그 어떤 음반도 이보다 더 강한 개성을 드러내진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호로비츠-아르투로 토스카니니, NBC(1943, RCA 레이블)


이 역시 토스카니니와 함께 협연한 음반이며 카네기 홀 공연실황 음반이다. 전체적인 느낌은 41년의 음반과 비슷하다. 길고 긴 1악장을 19분도 채 안되어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끝마치는 놀라운 기교는 듣는 이의 넋을 빼놓기에 충분하다. 41년 음반이 스튜디오 음반이라 음질은 조금 더 좋고 43년 공연실황 음반은 음질이 좋지 못하다.

호로비츠-브루노 발터, 뉴욕 필(1948, Music & ART)


브루노 발터와 함께 한 협연은 토스카니니와의 음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호로비츠와 발터라는 어찌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 만나 과연 어떤 하모니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기대를 많이 했는데 발터는 호로비츠 외에도 루돌프 제르킨이라는 또 한 명의 자신과 다른 성향의 연주자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을 멋지게 레코딩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 연주에서도 그에 못지 않은 대단히 멋진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발터는 그의 관현악단에게 호로비츠가 맘껏 활개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서포트 해주도록 한 것 같다. 역시 대가들은 성향이 다소 판이한 조합이라 할지라도 그 명성이 헛되지 않음을 알려주는 좋은 연주라고 하겠다. 물론 이 음반 역시 음질이 무척 좋지 않다.

Posted by snipe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