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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피우고 있는 프리츠 라이너. 얼굴 표정에 담배를 쥐고 있는 모습하며... 세기의 대 지휘자란 설명이 없다면 이 아저씨를 마피아 보스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지휘자 강건우는 강마에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강마에란 별명으로 불리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실력 하나는 인정하지만 너무도 까탈스러운 성격에 오만불손하며 막말을 함부로 쏟아내는, 참으로 친해질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강마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단원들을 다그치진 않았고 그가 쏟아내는 독설과 심한 행동들은 모두 순수한 예술혼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를 욕할 순 없었다.

강마에의 롤모델과 지휘자들의 동작 비교

20세기를 살았던 거의 대부분의 지휘자들은 이렇게 강마에처럼 독불장군에 독재자들이었다. 토스카니니, 셀, 므라빈스키, 카라얀, 첼리비다케…너무 많아서 일일이 쓰기도 힘들다. 이렇게 많은 독재자형의 지휘자 중에 어찌보면 강마에와 가장 비슷한 캐릭터의 지휘자가 한 명 있다. 타협을 모르고 고집불통이며 단원들과 다투는 일도 많았기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지만 그가 거치는 곳마다 모두 명문 오케스트라로 발돋움할 수 있었고 그 자신의 이익을 변호하는데 서툴렀다. 그리고 젊은 강건우처럼 뛰어난 제자를 알아보고 그를 훌륭한 지휘자로 키워낸 것까지도 똑같다. 지금으로부터 120여 년 전에 태어난 헝가리 출신의 지휘자. 프리츠 라이너이다.

토스카니니 할배와 사진찍은 라이너. 토스카니니와 니키쉬는 라이너에게 가장 많은 음악적 영향을 준 인물들이었다.


프리츠 라이너는 19세기 후반에 출생한 헝가리 출신의(헝가리에서 태어나 주로 미국에서 활동한) 3대 지휘자 중의 한 명이다. 나머지 두 사람은 조지 셀, 유진 오먼디가 되겠다. 라이너는 1888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하였는데 어릴 적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가 음악가가 되는 것보다는 법률가의 길을 걷길 원하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강권으로 잠시 법률공부를 하였으나 그는 곧 음악을 배우기로 작정하였고 부다페스트에 있는 리스트 아카데미에서 피아노를 배운다. 이때 그의 스승은 너무도 유명한 벨라 바르톡. 훗날 라이너는 바르톡의 난해하면서도 복잡한 음악을 가장 잘 해석하는 바르톡 음악의 전도사가 된다.

1922년 미쿡에 이주하기 전까지는 부다페스트의 오페라 하우스, 드레스덴 슈타츠카필레(Dresden Staatskapelle)에서 오페라 지휘자로 활동했다. 그리고 1922년 미국에 이주, 1928년엔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미국에서 활동할 당시 라이너는 대단한 실력을 갖춘 지휘자였긴 했으나 그 실력만큼의 인정을 받기까진 꽤 많은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는 그의 고집스럽고 타협을 모르는 성격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라이너하면 떠오르는 그의 분신과도 같았던 오케스트라는 CSO(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인데 그가 CSO의 상임 지휘자를 맡은 것은 그가 사망하기 10년 전인 1953년부터였다. 또 하나의 이유로 들 수 있는 것은 라이너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그것도 미쿡에서 활동했던 지휘자들이 너무 쟁쟁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있었다. 같은 헝가리 출신인 조지 셀, 유진 오먼디를 비롯하여 달리 설명이 필요없는 토스카니니, 발터, 쿠세비츠키, 뮌쉬 등에 밀렸던 것도 사실이다. CSO의 상임을 맡기 전까지의 라이너는 신시내티 교향악단, 피츠버그 교향악단,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등 여기저기를 전전하며 오랜 동안 지휘자 생활을 했으나 앞서 언급한 동시대의 라이벌들에 비해선 크게 주목받을 만한 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 상임지휘자 역이었던 CSO 상임에 부임하면서 그는 진정한 톱 클래스 지휘자로 발돋움할 수 있었고 프리츠 라이너라는 이름으로 발매되는 수많은 음반들은 바로 이 시절부터 나온 것이다.

이러한 성격을 종합해 볼 때 라이너는 타협을 모르는 독불장군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비타협적인 태도는 음악에만 국한 된 것이었고 자신의 이익을 내세우는 일에 대해선 융통성이 없었다고 한다. 단원들과 수많은 불화가 있었기에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는 법은 없었지만 그가 거쳐간 많은 오케스트라들, 신시내티랄지 피츠버그 같은 삼류 오케스트라를 미국에서 손꼽히는 오케스트라로 키워냈고 CSO를 세계적인 명성을 갖는 오케스트라로 키워낸 점은 그의 가장 큰 공로로 인정받는다. 뿐만 아니다. 그에겐 매우 훌륭한 제자도 있었다. 그는 바로 카라얀의 독주시대에 카라얀과 쌍벽을 이루었던 순수 미쿡 출신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다. 번스타인은 일찍이 음악의 아버지로 세 명을 언급하며 무한대의 고마움을 표시했는데 한 사람은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또 한 사람은 프리츠 라이너, 그리고 세르게이 쿠세비츠키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 한가지. 지휘자인 번스타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스승이 라이너인데 두 사람의 지휘스타일은 극과 극이다. 라이너는 손짓만 까딱거리는 대단히 절제된 동작을 하는 반면 번스타인은 지휘대 위에서 펄쩍펄쩍 뛰며 난리 굿을 벌인다.

난리 굿의 대명사 레너드 번스타인


라이너는 영화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야사 하이페츠와 함께 출연한 ‘카네기 홀’이란 영화인데 이 영화에서 뉴욕 필을 이끌고 하이페츠가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을 지휘한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 두 사람은 영화에서처럼 다시 호흡을 맞춰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실제로 녹음을 한다. 이 음반은 이 곡을 이야기할 때 오이스트라흐, 코간 등의 것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유명한 명반으로 꼽힌다. 




고집 센 지휘자로, 훌륭한 제자를 배출한 좋은 스승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라이너는 1963년 11월 15일.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당시 그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의 상연을 준비 중이었다.



프리츠 라이너가 지휘하는 CSO의 러시아 관현악곡 음반. 시원시원스럽게 질러대는 맛이 일품이다. 흘러나오는 곡은 글링카의 루슬란과 루드밀란 서곡.

Fritz Reiner (conductor)
Chicago Symphony Orchestra
녹음: 1959/03/14 Stereo, Analog
장소: Orchestra Hall, Chicago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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