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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삼중협주곡은 베토벤이 남긴 수많은 작품 중 완성도에서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정말 흔치 않은 작품이다. 논란의 이유를 살펴보면 세 가지 악기가 연주하는 멜로디의 부조화, 세 악기의 시간안배 불균형과 난이도의 차이, 극적 요소가 부족한 평면적 구성 등을 꼽을 수 있다. 사실 '베토벤'이거나 혹은 '베토벤 급'이 아닌 이 세상의 수많은 범인(凡人)들 따위가 감히 베토벤의 작품에, 다른 것도 아닌 완성도에 문제제기를 한다는 것은 우습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이 곡은 특히 베토벤이 남긴 협주곡이라는 장르에서는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다.

워낙 유명한 곡답게 정말 많은 음반들이 있고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음반을 꼽는다면 단연 이 음반이 영순위로 꼽힐 것이다. 때론 이름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음반들이 있는데 바로 이 음반이 그렇다. 바이올린에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피아노에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첼로에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그리고 그들의 반주를 맡은 악단은 베를린 필이고 지휘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다.

알만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고 한 번 이상은 반드시 들어봤을만큼 유명한 이 음반. 그리고 이 음반이 유명한 이유 또한 알만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다 알고 있다. 이 음반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리히터가 그가 남긴 회고록에서 이 음반을 매우 격렬하게 혹평하였기 때문이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참고 글*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1. 20세기 피아니스트의 알파와 오메가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1. 20세기 피아니스트의 알파와 오메가

이 글은 본인이 2007년 8월 6일에 인터뷰365라는 매체에 기고했던 글임. 각종 웹사이트에 퍼진 똑같은 내용의 글은 인터뷰365를 통해 여기저기 퍼진 것임.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클래식 피아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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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2. 그가 남긴 음악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2. 그가 남긴 음악

이 글은 본인이 2007년 8월 6일에 인터뷰365라는 매체에 기고했던 글임. 각종 웹사이트에 퍼진 똑같은 내용의 글은 인터뷰365를 통해 여기저기 퍼진 것임. 리히터의 음악 훌륭한 연주자, 지휘자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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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의 혹평을 서슴치 않기로 유명한 리히터. 중요한 것은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하게 모두까기 혹평을 했다는 것이다. 그가 이 음반을 회고하며 혹평한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리히터 자신과 오이스트라흐, 로스트로포비치는 서로 매우 가까운 사이였고(그들은 구 소련에서 사회주의 선전용으로 앞세운 최고의 상품으로 수많은 서방세계 국가에 연주여행을 다녔다) 따로 합주도 많이 했다. 하지만 세 사람이 함께 모여 합주한 적은 이 음반을 녹음하기 전에서야 이루어졌는데 매우 훌륭한 합주가 탄생했다. 그리고 이 합주를 듣게 된 카라얀의 제안으로 결국 이 연주를 녹음하게 되었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참고 글*

 

다비드 오이스트라흐-감성을 일깨워주는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감성을 일깨워주는 바이올리니스트

이 글은 본인이 2007년 6월 27일에 인터뷰365라는 매체에 기고했던 글임. 각종 웹사이트에 퍼진 똑같은 내용의 글은 인터뷰365를 통해 여기저기 퍼진 것임. Давид Фёдорович Ойстрах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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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오이스트라흐-그가 남긴 음악

 

다비드 오이스트라흐-그가 남긴 음악

이 글은 본인이 2007년 6월 27일에 인터뷰365라는 매체에 기고했던 글임. 각종 웹사이트에 퍼진 똑같은 내용의 글은 인터뷰365를 통해 여기저기 퍼진 것임. 오이스트라흐가 남긴 음악 바이올린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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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얀은 순전히 자신이 이끄는 오케스트라 파트가 돋보이는 연주를 원했다. 덧붙이자면 카라얀의 협주곡 연주에서 독주자를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지휘자로 악명이 자자하다. 카라얀의 이같은 의도는 리히터와 오이스트라흐의 심기를 무척 거슬리게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네 사람간의 알력 다툼이 생기게 되었다. 리히터는 오이스트라흐와 한 편이 되었고 약삭빠른 로스트로포비치는 카라얀에게 달라 붙어서 한 편이 되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참고 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bert von Karajan)-좋아할 순 없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bert von Karajan)-좋아할 순 없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1차원적이고 편중된 시각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그 누구도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의 7정(7情)을 갖고 살기 마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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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얀이 남긴 음악

 

카라얀이 남긴 음악

카라얀이 남긴 음악 카라얀의 인생을 쭉 살펴보면 그보다 더 성공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화려한 삶을 살았으나 화려한 빛에 드리워진 그림자 또한 대단히 어둡고 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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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터의 회고록에 보면 그는 로스트로포비치를 익살맞고 뛰어난 음악인으로 인정하지만 또한 공명심이 너무 강한 사람으로 묘사하였고 훗날 결국 결별하였다. 그 반면 오이스트라흐는 격찬을 했다. 한 번은 오이스트라흐가 리히터에게 피아노 반주를 부탁하며 '내 연주에 반주를 해주는 게 자네 경력에 해가 되진 않을까?'라고 부탁하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오이스트라흐-리히터-로스트로포비치의 관계를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오이스트라흐는 1908년 생으로 두 사람보다 나이가 많고 출세도 훨씬 앞선다. 리히터는 오이스트라흐보다 7살 어린 1915년생, 로스트로포비치는 둘보다 훨씬 어린 1927년생이다. 이런 대선배이자 당시 구 소련 음악계 최고의 영웅이자 우상인 오이스트라흐가 리히터에게 반주 좀 해달라고 명령을 내려도 감격할 판에 이토록 겸손한 말로 부탁을 하니 리히터가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역시, 역시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라는 훌륭한 인격체의 미담은 파도 파도 끝이 없는 것 같다. 훗날 리히터는 오이스트라흐의 제자였던 올레그 카간을 물심양면으로 돕기도 했다.

-빈정이 상할대로 상한 리히터는 '그래~! 니들끼리 잘 놀아봐라'하는 마음으로 일부러 피아노를 뒤로 빠지게 들리는 연주를 고집했다. 역시~! 역시 리히터다웠다. 참고로 리히터는 이 연주를 녹음하기 전 카라얀과 함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녹음한 적이 있다.  

 

 

바로 이 음반이다.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명반 중의 명반이다. 하지만 이 음반을 녹음할 때 리히터는 카라얀과 매우 사이가 좋지 않아졌고 다시는 저 인간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결국 그 결심이 불과 7년여 만에 무너졌지만...

-이렇게 기분이 상할대로 연주를 마친 리히터는 '아~! 이건 아닌데?'하며 다시 한 번 보충 연주를 하길 원했지만 카라얀과 로스트로포비치는 그들만의 세계에서 대단히 만족스러운 연주를 했는지 녹음을 끝마치고 말았다. 그리고 카라얀의 제안으로 판 껍데기에 실린 그 사진을 찍게 되었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사진을 보고 느꼈을 것이다. 이게, 이게 과연 대규모 프로젝트로 훌륭한 협연을 마친 사람들이 지을 법한 표정과 분위기인지. 카라얀은 굳은 표정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고 뒤에 선 세 사람은 멍청하게 웃고 있었다고 리히터는 회고한다. 그리고 리히터의 회고에 의하면 카라얀이 협연을 제안한 이유는 훌륭한 협연을 위한 것이 아닌, 그저 이 사진을 증거로 남기기 위한 행위였다고 아주 신랄하게 비판했다. 선거철이 되면 트럭에 라면 박스 싣고 요양원, 보육원 등으로 부지런히 발품팔고 다니는 정치인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리히터의 회고는 리히터만의 회고이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내용이 절대 객관적인 사실을 말한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리히터는 매우 신랄한 비평가이긴 했지만 적어도 남들처럼 자신에게도 매우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 모두까기 비평을 한 사람으로 유명했고 카라얀과 로스트로포비치의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면모는 이미 정평이 나있기도 하다. 이 한 장의 명반에 이런 재미있는 뒷 이야기가 많이 있다는 것. 이게 바로 클래식 음악을 듣는 또 하나의 기막한 묘미가 아니겠는가?

Posted by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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